문화·스포츠 문화

[조휴정PD의 Cinessay] 크루서블

증오에 맞서는 인간의 양심

영화 크루서블 포스터영화 크루서블 포스터





세계가 증오의 소용돌이에 빠져버린것 같아 두렵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손가락질하며 어느 종교는 안돼! 어느 인종은 죽여! 어느 출신은 미워! 이유가 점점 많아지고 증오는 깊어집니다. 여기에 개인적 원한과 불만, 그릇된 신념 등이 더해져 아무 죄없는 사람까지도 분풀이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그 공격의 대상이 내가 될 지 알 수 없습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 증오의 고리를 끊을수있을까요. 분명한건,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인간이지만, 해답도 우리만 갖고 있다는 겁니다. 시대와 사건은 다르지만 증오에 맞서는 인간의 양심과 저향을 그린 영화 <크루서블>(1996년작, 니콜라스 하이트너 감독, 아서 밀러 원작)을 다시 보게 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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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1692년 미국 메사츄세츠주 세일럼 마을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권위적이고 욕심많은 마을의 패리스목사는 우연히 소녀들이 춤추며 노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17세기의 엄격한 종교적 분위기에서 소녀들의 이런 일탈은 큰 사건이었고 목사의 추궁에 소녀들의 리더격인 에비게일(위노나 라이더)은 악마의 영혼이 시킨 짓이라고 거짓 자백을 합니다. 이때부터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됩니다. 그 악마의 영혼으로 평소 원한이나 이익이 충돌하는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지목하기 시작한겁니다. 에비게일은 한때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으나 지금은 가정으로 돌아간 프록터(다니엘 데이루이스)를 차지하기 위해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조안 앨렌)를 악마로 지목합니다. 에비 게일뿐 아니라 평범했던 마을 사람들은 각자의 이익과 원한을 해결하기 위해 소녀들의 거짓말에 자발적으로 넘어갑니다. 잘 차려진 증오의 밥상에 평소 자신의 증오를 쓰윽 올려놓으면 알아서 재판관이 처형해주니 이래저래 마음이 편했던겁니다. 마을사람 뿐 아니라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목사, 재판관도 이 일을 자신들의 권위를 공고히 하는데 십분 할용합니다.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간교한 에비게일보다 종교적 신념으로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재판관의 모습이 더 무섭게 보였습니다. 정의와 종교의 이름으로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게 형성된 그릇된 신념이야말로 역사상 얼마나 끔찍한 일들을 저질렀는지 우리는 잘아니까요. 이 와중에 19명의 죄없는 마을사람들이 악마의 영혼으로 지목됩니다. 이들은 다른 악마를 지목하는 것을 거부한 사람이자, 마을에서 가장 힘없는 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프록터는 아내가 악마가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의 가장 치부인 에비게일과의 관계를 재판관 앞에서 고백하지만 소용없습니다. 프록터는 악마와 결탁했다는 거짓 자백에 싸인까지 하지만 결국 양심을 져버리지 못하고 아내와 함께 처형당하고맙니다.

아무리 17세기라고해도 저런 일이 가능했을까싶지만, 지금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그때와 다른것이 별로 없어보입니다. 증오는 증오를 낳고 복수는 계속 복수를 예약합니다. 학교에서 휴양지에서 공항에서 100명, 200명이 죽어도 숫자에 점점 둔감해집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너무나 답답하지만 그래도 프록터나 엘리자베스처럼 중심을 지키고 인간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양심적이고 용기있는 사람들만이 이 세상을 돌려놓을수있을거라는 믿음은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이 증오의 크루서블(도가니, 호된 시련)이 멈추길 이 세상의 모든 신(神)에게 기도하고 싶은 요즘입니다.

KBS1라디오 <함께하는 저녁길 정은아입니다>연출

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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