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때문에 걱정이 많습니다. 앞으로는 편한 술자리라도 애매한 상황이 벌어지면 일단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냐 이런 얘기도 하고, 평소에 관계가 안 좋았던 직원이 별 문제가 안 될 일도 김영란법 위반으로 나를 신고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반 농담, 반 진담으로 합니다.”
한 공공기관 직원의 푸념이다. 김영란법에 대한 공직 사회의 불안감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볼 수 있는 말이다. 나아가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어떻게 법이 오·남용될지 예상할 수 있는 언급이기도 하다.
김대환 서울시립대 로스쿨 교수는 “김영란법에 따른 검찰·경찰의 수사권 남용 가능성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이 법의 적용을 받는 공직자 등의 오남용 가능성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가령 표절 같은 행위는 80~90%가 원한 관계 등에 있던 사람들이 제보하면서 문제가 불거진다”며 “김영란법 역시 평소에 앙심을 품고 있는 사람에 대한 고소·고발 등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공직자 윤리업무 주부 부처인 인사혁신처의 이근면 전 처장도 “특정인에게 앙심을 품고 고가의 선물을 제공한 뒤 수사기관에 신고해 처벌 받게 하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 그동안에는 정상으로 여겨졌던 선물 제공이나 가벼운 부탁 같은 것도 혹여 나중에 문제 될 가능성을 우려해 묻지마 신고, 고소·고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먼저 김영란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은 낮지만 고소·고발이 들어오면 수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원치 않더라도 김영란법에 따라 형사 처벌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검찰·경찰을 포함한 정부기관의 ‘자발적인’ 조사·수사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성용락 태평양 고문은 “일각에서는 김영란법의 적용 범위가 넓어 법이 유명무실해지리라는 예상도 있는데 그럴 가능성은 적다”고 했다. 국민들이 부정부패 근절을 강력히 염원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해서라도 각 기관에서 법의 실효성 확보 차원에서 전반적인 조사·수사에 착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검찰·경찰뿐 아니라 감사원·국세청·국민권익위원회·국무총리실 등에서 경쟁적으로 법 집행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영란법 집행의 활성화 여부는 법의 모태가 된 ‘공직자 행동강령’의 집행 건수만 봐도 예상할 수 있다. 권익위에 따르면 행동강령이 제정된 후 적발된 위반 공직자 수는 8년간 1만100여명에 이른다. 1년에 1,260명꼴이다.
수사기관의 김영란법 악용 가능성에 대해서는 법조계 전문가들도 의견이 엇갈린다. “100만원 정도의 금품 수수 사안을 수사하려고 검찰이 마구잡이로 들여다보겠느냐”며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회의론자들도 김영란법이 수사 과정에서 많이 활용될 수밖에 없다는 데는 동의하는 편이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예컨대 형법상 뇌물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 김영란법 위반 혐의를 찾아내 이를 ‘지렛대’ 삼아 뇌물 수사의 활로를 찾으려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경조사비가 과다 지급됐다는 제보 하나가 들어와 압수수색을 했는데 다른 과다 지급 사례가 다수 드러나면 이 역시 수사를 안 할 수 없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이래저래 김영란법 수사가 활성화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서민준·이완기기자 morando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