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토끼사냥이 끝났으니…스틸야드 폐쇄



스틸야드(Steelyard). 낯 익다. K 리그 포항 스틸러스 구단의 홈 경기장의 이름이니까. 하지만 ‘스틸야드’라는 이름의 저작권자는 따로 있다. 한자 동맹(Hanseatic League).* 스틸야드는 독일 지역의 자유도시들과 러시아와 스웨덴 일부 대도시 간 느슨한 연합체였던 한자동맹이 1282년 런던에 설치한 무역지대였다.** 후삼국 시대의 해상왕 장보고가 당나라 곳곳에 설치한 ‘신라방’과 성격이 비슷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으로 치자면 외국인 전용공단 겸 자유무역지대인 스틸 야드가 설치된 시기는 1282년. 영국이 먼저 원했다. 무엇보다 발트해에서 주로 잡히던 청어를 수입하는데 한자동맹만큼 유능한 수입상이 없었다. 단백질 공급원인 청어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영국은 독일 상인들의 거주구역을 허용하고 1303년에는 내국세와 관세를 면제해줬다. 타국 상인에게 특혜를 베푼 이유는 따로 있었다. 왕실의 비자금 공급원이었기 때문.


특권을 누렸던 스틸야드 상인들은 취급 품목을 넓혀 나갔다. 러시아와 폴란드산 곡식과 목재, 모피와 꿀, 아마포(亞麻布), 스웨덴산 구리와 철, 청어를 영국에 들여왔다. 자연스레 한자동맹은 영국 전체의 무역까지 휘어잡았다. 맨체스터 같은 산업지대의 성장도 한자동맹 상인들의 덕을 봤다.*** 애초에는 부유한 플랑드르 지방의 원료 공급지이자 하청 생산기지에 불과했던 맨체스터 등은 한자동맹 상인들의 중개 무역에 힘입어 판로를 찾을 수 있었다.

영국산 양모와 모직물을 유럽 시장에 수출하는 등 한때 영국 수출의 절반을 도맡던 이들은 점차 힘을 잃었다. 영국의 상공업이 점차 강해졌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영국이 오스만튀르크와 직접 교역하고 에스파냐 무적함대를 격파(1588년)해 제해권을 확보한 뒤부터 특혜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분노한 한자동맹 측이 영국인의 독일 내 거주를 제한하자 영국 국왕 엘리자베스 1세는 1598년7월25일스틸야드 폐쇄령을 내렸다. 영국은 얼마 뒤 독일 상인들을 다시 불러들였으나 스틸야드는 과거와 같은 명성을 회복하지 못했다.

영국은 스틸야드 폐쇄와 비슷한 시기에 이탈리아 기업인과 금융인들도 쫓아냈다. 그래도 이탈리아 북부 출신 상인들이 거주하던 금융가는 오늘날까지 런던의 금융 중심지인 ‘롬바르드 스트리트’로 남아 있다. 반면 독일인 거주지역인 스틸야드 지역은 1666년 런던 대화재로 사라졌다. 스틸야드에서 통용됐다는 대저울 ‘스틸야스 밸런스’에 흔적이 남아 있을 뿐이다.


스틸야드의 흥망은 기업 해외진출의 위험을 말해준다. 기업들은 생산비용 저감을 통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생산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지만 역사가 말해주는 그 끝은 좋지 않다. 경기가 살아난다는 미국과 일본에서도 해외로 빠져나갔다 돌아오는 기업이 많다.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는 발렌베리 재벌가는 ‘임금이 비싸고 세금이 많아도 조국 스웨덴을 결코 떠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기업을 영위해 스웨덴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땅에서 ‘존경할 수 있는 기업과 기업인’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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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 한자동맹은 단순한 도시국가끼리의 단순한 동맹에 머물지 않는다. 1370년에는 덴마크와 전쟁을 치러 한자동맹이 승리한 적도 있다. 베네치아·제노바·피렌체 등 이탈리아 도시국가들과 함께 유럽의 경제권을 양분했던 한자동맹이 축적한 부의 근원은 생선이었다. 배가 다니기 어려울 지경으로 청어가 많았고 수요 역시 무궁무진했다. 사순절 금식 기간과 육류공급이 줄어드는 겨울철의 대체 단백질 공급원이었기 때문이다. 청어를 잡고 운반하며 소금으로 저장 처리한 후 원거리 무역을 통한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한자동맹의 돈벌이였다. 청어 무역은 염장용 소금 생산업과 운반 상자를 만드는 목재산업, 조선업 등 후방산업도 키웠다.

잘 나가던 한자동맹은 두 가지 이유에서 무너졌다. 첫째는 기득권 지키기에서 나온 보호무역주의. 러시아와 스웨덴이 발흥하자 보호무역의 갑옷을 택했으나 스스로 발을 묶는 결과를 가져왔다. 두 번째 이유는 자연환경의 변화. 알 수 없는 이유로 청어의 산란지가 갑작스레 발트해에서 북해로 바뀌어버렸다. 북유럽의 상권은 한자동맹에서 네덜란드를 거쳐 영국으로 넘어갔다.

** 스틸야드의 어원은 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안뜰’ 을 뜻하는 독일어 방언 ‘stalgard’에서 유래됐다는 게 정설이다.

*** 맨체스터는 영국에서도 산업혁명이 일어난 최초 도시다. 철도가 처음 깔린 것도 1830년 맨처스터-리버풀간 56.32㎞ 구간이다. 프로축구로 유명한 두 도시는 영국의 초기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도시다.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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