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마음코칭] 여행은 인생과 같은 것

정운스님 동국대 선학과 외래교수

목적지 도착도 중요하지만

길녘 과정 또한 여행의 일부

모든 것 내려놓고 떠나보면

새로운 인생길 찾을 수 있어





교육방송에서 ‘테마기행’이라는 주제로 방영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매주 그 지역의 언어와 노하우를 가진 작가나 교수·방송인 등 여러 분야의 사람이 출연한다. 지난주는 사진작가의 파키스탄 기행이었다. 파키스탄이 지금은 이슬람 국가이지만 옛날에는 개혁적 불교 사상이 싹튼 곳이다. 불교 유적지가 많은 곳이라 관심을 갖고 시청했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대신 인생을 배우는 기회였다. 내용 중에는 작가가 K2 베이스캠프까지 약 180㎞를 걷는 8일간의 트레킹이 있었다.


K2로 출발하기에 앞서 주인공(사진작가)이 포터를 7~8명 선발했다. 포터들은 매니저, 요리사, 길을 잘 아는 연장자 등 나름대로 역할이 있었다. 마치 삶의 무게를 짊어진 듯 포터들은 25㎏의 짐을 메고 끝없이 광활한 길을 걸었다. 스카르두 마을에서 K2까지의 여정이 시작되자 많은 사람이 제각각 출발했다. 연장자는 젊은 사람들을 따라가지 못할 것을 염려해 먼저 출발했고 텐트를 쳐야 하는 사람도 미리 길을 떠났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매우 척박했다. 빙하에 쌓인 암석이나 자갈길, 곳곳에서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진 틈), 모래바람 등이 포터와 여행객을 힘들게 했다. 자갈밭 천지인지라 자칫 잘못하면 자갈을 맞거나 미끄러질 수도 있었고 크레바스에 떨어질 수도 있었다. 길녘의 사진작가가 절벽 아래로 미끄러지자 여행 매니저가 그를 잡아 이끌며 말했다.

“이렇게 넘어지거나 미끄러져 위험에 처하는 것도 트레킹의 일부입니다.”




그렇다. 바로 저 트레킹은 인생길과 같았다. 이 팀이 목적지까지 가는 내내 자갈밭이나 고산병 등의 고난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멀리 보이는 수만 년 동안 녹지 않은 빙하, 병풍처럼 펼쳐진 만년설의 산맥들이 여행객에게 감동을 줬고 그들은 자연의 위대함에서 겸손을 배웠다. 삶이 고통스러운 만큼 인생길에 영광스러운 일이나 행복한 순간이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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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이 되자 하루 일정량의 걸음을 멈추고 사람들은 텐트를 치고 요리사가 밥을 한다. 모든 포터와 여행자가 모여 밥을 먹는다. 사진작가는 포터들과 밥을 먹으면서 이렇게 인터뷰했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포터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대화를 주고받고 인생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여행 목적 중 하나입니다.”

다음 날 사람들에게 잡아먹히기 위해 마을에서부터 따라온 염소가 세상과 하직했고 이틀만 포터 일을 하기로 한 연장자가 마을로 되돌아갔다. 할아버지는 설산을 배경으로 평생 포터 일을 했는데 이제는 정년이 됐다면서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산맥들을 자식 쳐다보듯 둘러봤다. 또다시 여정이 시작됐다.

위험이 도사리는 수많은 여정을 거쳐 일행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얼음과 눈의 광장’ ‘신들의 정원’으로 불리는 콩코르디아에 도착한 것이다. 이곳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7,000~8,000m의 고산 준봉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마침내 하늘의 군주라고 칭하는 K2와 마주해 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 “이 목적지까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수년 전 장기간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이때 ‘여행은 바로 인생과 같다는 것’을 배웠다. 단순히 목적지가 아니라 가는 길녘의 과정 또한 여행의 목적이다. 8일간 K2까지의 트레킹은 필자가 직접 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것을 배우게 했다. 여행 속에 있는 고난과 환희, 성취, 노년의 인생, 이별, 죽음, 함께하는 이들의 땀과 인정이 바로 우리의 인생길이다. 그러니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보라. 그런 떠남에서 새로운 인생길을 발견할 것이다.

정운스님·동국대 선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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