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아베 신조 정부가 총 28조1,000억엔(약 304조원) 규모의 경제대책을 확정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지난 2009년 4월 56조8,000억엔 규모의 경제위기 대책 이후 최대 규모의 부양책으로 아베노믹스 초창기와 같은 파급력을 되살리기 위해 아베 총리가 꺼내 든 회심의 카드다. 하지만 대규모 부양책이라는 아베 정부의 요란한 선전과 달리 직접 재정지출로 새로 투입되는 자금은 향후 2년에 걸쳐 7조5,000억엔, 올가을 임시국회에 제출될 올 회계연도 추경예산은 4조엔 규모에 그친다. 아베 정부는 일본은행(BOJ)의 금융완화와 정부 재정지출의 경기 ‘쌍끌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BOJ의 추가 완화책에 이어 정부의 경제대책도 기대에 못 미친다는 실망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는 2일 오후 임시 각의(국무회의)에서 인프라 정비와 중소기업 대출 등을 골자로 한 28조1,000억엔 규모의 경제대책을 결정했다. 이날 앞서 열린 각의에 제출된 경제재정백서의 지적대로 개인소비와 설비투자가 약화하면서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한 개선 움직임이 둔화 ”하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것이다.
핵심 사업은 초고속열차인 ‘리니어 중앙 신칸센’ 개통을 최대 8년 앞당기고 대형 크루즈선이 정박할 항만을 정비하는 내용을 포함한 총 10조7,000억엔 규모의 인프라 정비다. 또 중소기업 지원 등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대책에 10조9,000억엔, 저소득층에 대한 현금(1만5,000엔) 지급 등 이른바 ‘1억 총활약사회’ 관련 비용으로 3조5,000억엔, 방재·부흥에 3조엔이 각각 투입된다. 일본 내각부는 이번 대책이 실질 국내총생산(GDP)을 수년간에 걸쳐 1.3% 끌어올릴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아베노믹스를 되살리기 위한 대규모 경기부양책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대규모 경제대책이 적어도 일본 경제가 침체로 빠지는 것은 막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실제 부양 효과는 정부의 선전만큼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날 도쿄 증시에서 닛케이평균지수는 전날보다 1.47% 하락한 1만6,391.45에 거래를 마쳤으며, 엔화 가치는 장중 달러당 101.65엔으로 3주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경제대책 가운데 실제로 신규 투입되는 재정은 7조5,000억엔 수준이며 그나마 대부분이 향후 2년에 걸쳐 집행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아베 총리 취임 직후인 2013년 1월 긴급 경제대책에 포함됐던 10조엔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 가운데 정부가 올 회계연도의 추경예산으로 처리할 금액은 4조엔에 그친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마르셀 티엘리앙 이코노미스트는 재정지출 규모가 “매우 실망스러운 수준”이며, 이는 내년 성장률을 최대 0.1%포인트밖에 높이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WSJ에 따르면 일본의 GDP 성장률은 올 1~3월 1.9%(연율 기준)에서 4~6월에 0.1%로 크게 둔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3일 개각에서 유임이 확실시되는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은 이날 저녁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와 회동, 정부와 BOJ가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한 정책적 시너지효과를 높인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BOJ는 지난달 29일 상장지수펀드(ETF) 매입 규모를 종전의 배 가까이 늘어난 6조엔으로 확대하는 추가 완화책을 내놓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