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개와 통닭의 시간

[식담객 신씨의 밥상] 열아홉번째 이야기-통닭



푹푹 찌는 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더위에 자다 깨서 하는 샤워가, 어느덧 일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모자란 잠 때문에 회사에선 비몽사몽 허우적대다 보니, 쌀쌀한 겨울날이 그리워집니다.

불현듯 어느 정겨운 크리스마스 이브의 추억이 되살아납니다.

1992년 12월 24일, 고등학교 2학년 신대두는 하숙집에 남았습니다.

딱히 만날 사람도 없고, 지갑은 날씬했습니다.

그래도 그냥 맹숭맹숭 넘어가기엔 뭔가 억울했습니다.

마침 윗층 하숙생 영명이도 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영명이는 모범생이었습니다.

공부도 운동도 잘했고, 성격도 유순하고 겸손했습니다.

“영명아, 이따가 내 방으로 와라. 파티하자. 아, 3,000원만 줘라.”

어둑해진 거리로 달려나가, 1,200원짜리 진로 포도주 두 병과 2,500원짜리 시장표 통닭을 사왔습니다.

멕시칸 치킨과 페리카나 양념 통닭 한 마리가 7,000원쯤이던 시절, 시장 닭튀김은 허름한 청춘에 축제 같은 시간을 선물했습니다.

“한 잔 받으셔.”

영명이가 화들짝 놀랍니다.

“학땡이 투들 마디면 안 되다나?” (해석: 학생이 술을 마시면 안 되잖아?)

만능소년 영명이는 딱 하나 아쉬운 게 있었는데, 그게 바로 혀의 길이였습니다.

“괜찮아, 포도주는 예수님 피래. 사슴피도 먹는 대한건아가 유난은~!”

“아다떠, 대딘 딱 한 단만 마디 꺼다!” (해석: 알았어, 대신 딱 한 잔만 마실 거다!)

‘후훗, 과연~?’

1년도 남지 않은 대학입시를 시작으로 이야기 보따리가 풀렸습니다.

걱정과 불안은 술잔을 들도록 부추겨, 영명이의 한 잔은 두 잔과 세 잔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숙집 주인아저씨와 학생 주임 선생님을 별미 삼아 홀짝이다 보니, 어느덧 술병이 두 병 모두 바닥까지 말라버렸습니다.

알코올이라곤 난생 처음 마셔본 영명이의 뇌는, 지구 자전 속도보다 더 빨리 돌아버린 듯했습니다.

갑자기 영명이가 마당으로 튀어 나갑니다.

“우웨엑~!”

그렇게 맛있게도 먹었던 통닭을 걸쭉한 점액질 상태로 반납합니다.

조금 덜 취한 신대두가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마당에 전시된 ‘영명이표 통닭죽’을 치우기 시작합니다.

혀가 꼬인 영명이가 한층 더 검소해진 발음으로 외칩니다.

“도은 탱가기 나따...개들 풀댜!” (해석: 좋은 생각이 났다, 개를 풀자!)

“우디 영명이가 왜 갑따기 강아디 가튼 언어들 구다하티까~?” (해석: 우리 영명이가 왜 갑자기 강아지 같은 언어를 구사하실까?)

“달 드더봐, 티킨냄태가 나니까 탐티기들 푸더놓으면 다 텅토가 되게띠!” (해석: 잘 들어봐, 치킨냄새가 나니까 삼식이를 풀어놓으면 다 청소가 되겠지!)

마당에 묶인 주인집 셰퍼트 ‘삼식이’를 풀어서, 본인이 만든 통닭죽을 치우자는 아이디어!

왠지 그럴싸하게 들립니다.

자고 있던 삼식이를 깨워 문제의 물질 앞으로 데려갑니다.

“킁킁킁킁...”

냄새를 맡던 삼식이는 새콤한 냄새에 빈정이 제대로 상했는지, 열린 대문으로 튀어나갑니다.

‘죽었다!’


삼식이는 하숙집 주인아저씨가 아들보다 아낀다는 멍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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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 당시 몸값이 30만원이나 나가, ‘30만원을 먹어치웠다는 의미’로 이름을 ‘삼식이’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영명이와 대두는 달아난 삼식이를 맹렬히 쫓아갑니다.

하지만 다리가 네 개나 달린 삼식이를 둘이 합쳐 다리 네 개인 영장류 고교생 두 명이 따라잡는 건 쉽지 않습니다.

삼식이는 우리가 제 녀석과 술래잡기라도 하는 줄 알고, 멈춰서 돌아보다가 다시 질주하기를 반복합니다.

변견 훈련시키냐는 말과 반대로, 우리는 변견에게 훈련을 받고 있었습니다 ㅠㅠ 오래 달리기 훈련을.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동네를 제대로 돌았습니다.

놀다 지친 삼식이를 간신히 데려와, 개집에 묶어두고 한숨을 돌립니다.

온몸은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됐고, 싸구려 포도주의 숙취는 자진모리장단으로 옆통수를 후려칩니다.

때마침 라디오에서 구성지게 캐롤이 흘러나옵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삼식이 잡느라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싸구려 포도주 때문에 속은 거북합니다.

영명이가 노래를 따라부릅니다.

“고탱안 밤, 거부칸 밤” (해석: 고생한 밤, 거북한 밤)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대두야, 근데 우디 이더케 툴 마텨도 되는 거야?” (해석: 대두야, 그런데 우리 이렇게 술 마셔도 되는 거야?)

“괜찮아, 술은 원래 동네 노는 형이랑 나쁜 친구한테 배우는 거야.”

그렇게 18세 영장류 소년 2명의 크리스마스가 깊어갔습니다.

통닭은 ‘한 마리 통째로 조리한 닭’이라는 의미입니다.

흔히 튀김 통닭을 통닭이라고 부르지만, 가장 먼저 나왔던 통닭은 전기구이 통닭이었습니다.

전기 그릴에 통째로 몸을 꿴 닭들이 빙글빙글 돌며 익어갔죠.

1960년대 크리스마스 최고의 선물은 케이크와 전기구이통닭이던 시절이었다고 합니다.

19070년대 들어 저렴한 식용유가 보급되며, 가마솥에 기름을 넣고 튀긴 통닭이 널리 퍼졌습니다.

엄마 손을 잡고 시장에 가면, 항상 자글자글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통닭 냄새에 발걸음이 멈춰지곤 했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 서울에 하얀 양복 영감님, 커넬 샌더스 대령이 나타났습니다.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KFC)’이 독특한 양념으로 선풍적 인기를 모았습니다.

전국 여기저기서 이 이름을 본 딴 ‘켄터키 치킨’이 생겨나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죠.



아무튼 1980년대는 통닭이 ‘통째로 튀기던 닭’에서 ‘조각 내 튀긴 닭’으로 변화하던 시기였습니다.

1988년, 고추장으로 양념한 통닭 ‘멕시칸 치킨’이 TV 광고를 타고 온 나라에서 히트했습니다.

대전이 고향인 페리카나치킨이 원조라고 하지만, 제가 살던 지역엔 멕시칸 치킨이 양념통닭의 대명사였습니다.

파격적인 환상의 맛이었지만, 가격이 6,000원이나 나가 좀처럼 맛보기 힘들었습니다.

신라면 한 개가 200원이던 시절, 양념 통닭 한 마리는 고급 라면 30개와 같은 가격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마리에 2,500원이던 시장 통닭이 참 고마웠던 것 같습니다.

주머니 가벼운 고등학생들도 돈을 모아 사 먹을 수 있었으니까요.

배불리 먹지는 못했지만, 그 맛에 참 행복했던 모습들이 떠오릅니다.

지금도 시장 앞을 지날 때면 자글자글 노릇하게 익어가는 통닭 냄새에 기분이 좋아지곤 합니다.

영명이는 이제 술이 좀 늘었을까요? ^^;; /식담객 analogoldman@naver.com

<식담객 신씨는?>

학창시절 개그맨과 작가를 준비하다가 우연치 않게 언론 홍보에 입문, 발칙한 상상과 대담한 도전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어원 풀이와 스토리텔링을 통한 기업 알리기에 능통한 15년차 기업홍보 전문가. 한겨레신문에서 직장인 컬럼을 연재했고, 한국경제 ‘金과장 李대리’의 기획에 참여한 바 있다. 현재 PR 전문 매거진 ‘The PR’에서 홍보카툰 ‘ 미스터 홍키호테’의 스토리를 집필 중이며, PR 관련 강연과 기고도 진행 중이다. 저서로는 홍보 바닥에서 매운 맛을 본 이들의 이야기 ‘홍보의 辛(초록물고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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