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구조조정 급한데 늑장 추경..국책銀 자본확충에 '한은 마이너스 통장' 먼저 쓰나

"서별관 청문회 없이 추경도 없다" 야권 거센 반발에

정부, 수은·산은에 1조4,000억 현금출자 구상 틀어져

"자본확충펀드가 선발투수로 나와야 할 상황 생길수도"

'컨틴전시플랜'으로 발권력 논란 맞섰던 韓銀은 난감



정부가 마련한 11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이 국회 문턱에 걸리면서 한때 ‘무용론’까지 휩싸였던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에 다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구조조정의 지침서가 될 맥킨지 보고서가 조만간 발표되면 조선업 구조조정을 맡은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에 대한 자본확충 문제가 다시 걸림돌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

당초 정부는 추경을 통해 두 은행에 대한 현금출자를 우선 단행할 계획이었지만 추경의 국회 통과가 예상보다 늦어질 경우 한은의 발권력이 먼저 동원돼야 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5일 국책은행과 한은 등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안이 불발될 경우 국책은행의 자본확충을 위해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가 동원될 가능성이 검토되고 있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추경예산안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자본확충펀드가 동원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6월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하면서 11조원 규모의 자본확충펀드를 포함한 국책은행의 선제적 자본확충방안 청사진을 내놓았다. 정부가 국책은행에 1조원 규모의 현물출자를 먼저 하고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해 만든 10조원 규모의 ‘마이너스 통장’으로 차후 자금 소요에 대응하겠다는 게 밑그림의 골격이었다. 이때만 해도 정부가 ‘추경을 안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추경을 통한 현금출자는 아예 계획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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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권력 동원 논란이 거세지자 한은은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고 나섰다. 국책은행 자본확충의 일차적 책임은 정부 재정이 담당하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금융 시스템 불안을 막기 위해 펀드를 쓴다는 논리를 폈다. 이런 논리에 따라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도 2009년과 달리 산은과 수은의 자금 소요가 있을 경우에만 펀드가 가동되도록 하는 ‘캐피털 콜’ 방식으로 설계됐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국책은행의 모럴해저드를 막겠다며 시장 실세금리보다 높은 ‘페널티 금리’도 적용하기로 했다.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자본확충펀드 무용론이 일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정부가 추경을 편성하겠다고 입장을 바꾸고 추경안에 수은(1조원)과 산은(4,000억원)에 대한 현금출자안을 담자 한은의 자본확충펀드 순위는 더욱 뒤로 밀리는 듯했다. 하지만 추경이 국회에서 꽉 막히면서 정부의 국책은행 자본확충계획은 틀어졌다. 국회의 과반 의석을 확보한 야3당은 ‘서별관 청문회’ 없이는 추경예산안 통과가 어렵다는 공식 입장을 밝힌 상황이다.



추경을 믿고 있던 금융당국과 국책은행들은 난감해하고 있다. 추경안이 불발될 경우 정부의 1조원 현금출자를 통해 BIS 비율을 11% 수준까지 올리려 했던 수은의 계획은 무산된다. 수은 관계자는 “정부가 6월 수출입은행의 BIS 비율 10.5%가 적정하다고 했는데 그 판단을 기준으로 하면 추경이 안 될 경우 자본확충펀드를 쓰든지 자체적으로 코코본드를 발행해 자본을 확충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3월 말 기준 수은의 BIS 비율은 9.89%다. 정부가 급한 대로 국무회의 의결만 거쳐도 되는 현물출자를 선택할 수도 있지만 국회의 반대가 거센 상황이라 이마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정부 안팎의 관측이다.

구조조정에서 한 걸음 물러서 있던 한은도 ‘마무리투수’가 아닌 ‘선발투수’로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커졌다. 한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 직접출자가 앞선 다음 그래도 부족하면 마지막에 자본확충펀드를 쓰려던 게 당초 계획인데 추경이 늦어지면서 자본확충펀드가 동원될 가능성이 다시 높아진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금융 시스템 불안을 위해 마련했던 컨틴전시플랜이 구조조정 지원의 ‘주포’가 되는 본말전도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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