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정책

PEF '노는 실탄' 19조...세컨더리(중간자금회수) 펀드시장 키워 투자길 터줘야

■부동자금 1,000조 자금시장으로 되돌리자

<5·끝> 시급한 모험자본 육성

PEF 31%가 자금회수 못할까 적극적 투자 못해

세컨더리 활성화로 위험 축소 땐 구조조정도 탄력

운용사도 전문성 보완하고 기업 가치 극대화 필요



# 지난 2004년 12월14일 금융감독위원회에 2개의 팀이 뛰어들어왔다. 국내 첫 경영참여형 사모투자펀드(PEF) 등록을 노린 우리은행과 미래에셋증권 실무진이었다. 금감위의 승인을 거쳐 우리은행은 2,100억원을 출자해 ‘우리제1호’를 결성했고 미래에셋증권 역시 1,000억원 규모의 ‘미래에셋파트너스1호’ 조성을 마쳤다.

12년 전 3,100억원 규모로 출발한 PEF 시장은 무럭무럭 자라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약정액 60조3,000억원을 달성했다. 공모 주식형 펀드 설정액(67조원)과도 큰 차이가 없는 규모다. 이는 기업 주식을 소극적으로 사들이는 투자금과 경영권까지 노리는 적극적 자금 수요의 규모가 엇비슷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PEF는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해 기업 가치를 높인 뒤 3~10년 내에 되팔아 수익을 남기는 펀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6월 말 기준으로 PEF의 전체 약정액 60조3,000억원 중 실제 투자가 이뤄진 돈은 41조2,000억원이다. 국내 PEF 시장의 31.7%를 차지하는 나머지 19조1,000억원은 여전히 갈 길을 못 찾고 여윳돈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 같은 현상을 “일부 대형 운용사 외에는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지 못하면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불임 PEF’가 늘어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웅섭 금감원장은 6월 말 PEF의 여윳돈이 자본시장에서 활발히 돌게 하려는 목적으로 국내 주요 PEF 운용사 대표들을 만나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달라고 주문했지만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PEF 시장에 상당한 여윳돈이 있으면서도 더 적극적인 기업 투자가 이뤄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금회수(엑시트·Exit)의 어려움이다. 실제 MBK파트너스가 2007년 종합유선방송사업자인 딜라이브(옛 씨앤앰)에 외부 조달자금을 합쳐 총 2조2,000억원을 투자했으나 매각에 성공하지 못하자 대주단(채권금융사모임)이 최근 출자전환과 채무조정에 나서기도 했다. 그동안 업황이 나빠져 기업의 몸값은 떨어졌는데 PEF는 정해진 기간 내에 인수금액보다 더 높은 가격에 경영권을 팔아야 하는 탓에 발생하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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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유로 PEF가 보유한 기업의 지분을 한 번에 내놓는 대신 부분적으로 매각하는 세컨더리(중간회수) 펀드시장을 활성화해 출자자(LP·유한책임투자자)와 함께 투자 위험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세컨더리 펀드는 PEF가 이미 투자한 기업의 지분을 중간에 매입하는 방식과 연기금 등 출자자가 가진 PEF 지분을 사들이는 형태로 나뉜다.

PEF의 기업 투자 지분을 인수하기 위한 세컨더리 펀드는 SK증권과 대신프라이빗에퀴티(PE)가 2,040억원 규모로 조성해 금융당국 등록을 앞두고 있다. 박병건 대신PE 대표는 “PEF가 투자를 통해 보유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지분을 세컨더리 펀드로 사들일 예정”이라며 “새로운 투자를 위해 유동성을 필요로 하는 PEF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스틱인베스트먼트도 올해 상반기에 5,700억원 규모로 조성한 펀드인 ‘스틱스페셜시츄에이션’을 통해 일부 자금을 대기업 세컨더리 투자에 활용할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금융당국도 세컨더리 펀드시장 조성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정책금융기관들이 출자해 설립한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은 국내 최초로 출자자 지분 유동화 펀드를 조성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성장금융이 900억원을 출자하면 2개 운용사가 1,800억원 규모의 출자자 지분 유동화 펀드를 만들어 운용하는 형태다. 그동안 PEF 출자자는 운용사가 기업 매각에 성공할 때까지 기다릴 방법밖에 없었으나 출자자 지분 유동화 펀드를 통해 중간에 유동성을 확보할 또 다른 기회가 생기는 셈이다. 이동춘 한국성장금융 대표는 “LP 지분 유동화 펀드가 자금 회수 창구로 자리 잡으면 연기금이나 공제회 등의 기관투자가가 더 안심하고 PEF 등에 자금을 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PEF 운용사 역시 기업 경영 역량을 더 쌓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펀드 결성을 위한 자금 모집에만 힘을 쏟을 것이 아니라 기업 투자 이후의 행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PEF 제도 도입 후 국내 운용사가 평판 관리를 위해 안정적인 수익 창출에 주력하면서 기업 경영 성과 개선에 큰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해외 유력 PEF 운용사처럼 전문적인 경영(오퍼레이션)조직을 갖춰 기업 가치를 극대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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