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관광/ 서울 성북구] 돌담 너머..골목마다...역사·문화가 어우러진 寶庫

전통의 멋·정취로 외교 명소 된 한국가구박물관

'무소유의 사찰' 길상사·대사관저 등 볼거리 풍성

지친 몸 茶로 다독이는 '수연산방'도 색다른 경험

한국가구박물관의 전시실 격에 해당하는 궁집. ‘궁집’이라는 이름은 일제가 창경궁을 해체하면서 버려진 폐자재를 가져다 새로 집을 지은 데서 연유한다.한국가구박물관의 전시실 격에 해당하는 궁집. ‘궁집’이라는 이름은 일제가 창경궁을 해체하면서 버려진 폐자재를 가져다 새로 집을 지은 데서 연유한다.


찜통더위 속에 콩나물시루 같은 피서지를 찾아봐야 고생길만 훤할 뿐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서울의 당일 여행지를 추천하라고 한다면 기자는 가까운 성북구를 추천하고 싶다. 특히 문화와 역사에 안목이 있는 분들에게 아마도 성북구는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성북구는 짧은 시간 동안 우아하고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문화와 예술을 일별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보다 서울주재 외교관들과 외국 정상들이 먼저 알아본 성북구의 이곳저곳은 야외 피서지처럼 몸이 즐거운 곳이 아니라 우리의 정서와 머릿속이 시원해지는 곳이다.

성북구에서 뜨고 있는 한국가구박물관은 최근 들어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난 3월 한국·프랑스 외무장관회담이 이곳에서 열리면서 조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이곳을 방문해본 사람은 많지 않다.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공개한 지가 얼마 안됐기 때문이다. 그래 봤자 한 번 관람에 15명씩 하루 대여섯 차례만 입장시키는 까닭에 수용인원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곳은 아직도 은둔 중인 박물관일지도 모른다.


서울에는 널린 게 사설 박물관들이고 그들 중 상당수는 개인의 컬렉션을 일반에 공개하는 수준에 머무는 곳들이 적지 않다. 지인이 한국가구박물관에 대해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해 이곳을 찾게 됐지만 기자는 워낙 의심이 많은데다 개인 박물관의 콘텐츠에 여러 번 실망을 해온 터라 이곳 구경이 그다지 탐탁지 않았다.

하지만 들어서는 순간 그런 우려는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넓지 않은 그 공간에 깃든 콘텐츠와 스토리가 풍부하고 깊었기 때문이다. 한국가구박물관은 정미숙 관장이 수집한 2,500점의 한국 가구를 전시하고 있는 사설 박물관이다. 하지만 이 중 일반에 공개되고 있는 것은 500점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수장고에서 잠을 자고 있다.

가구박물관은 소장품을 종류별(안방·사랑방·부엌), 재료별(먹감나무·은행나무·대나무·소나무·종이), 생산지역별로 분류해 전시하고 있다. 안내를 맡은 박중선 이사는 “재료·용도·출처별로 분류하는 것은 우리 고유의 방식”이라며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수종은 1,000가지인데 그중 100여종이 가구를 만드는 목재로 사용된다”고 말했다.


격조가 높은 궁집은 이따금 국제회의 장소로 활용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등이 궁채 안의 테이블에 앉아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회담을 한 정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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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들어가 왼쪽에 있는 곳간채는 마포에 있던 민씨댁 곳간을 옮겨다 놓은 것이다. 박물관 측은 이 곳간이 서울 사대부 집안의 곳간 중 가장 큰 규모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곳간채에서는 브래드 피트, 안젤리나 졸리 부부와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식사를 하고 갔다. 특히 브래드 피트는 가족과 함께 박물관을 둘러본 후 “한국의 주거문화와 가구박물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하며 경의를 표했을 정도다. 관람은 홈페이지(www.kofum.com) 등을 통한 사전 예약자에 한한다.

성북구에는 지난 2010년 열반한 법정이 머무르던 길상사도 있다. 길상사는 법정스님이 만년을 보낸 곳으로 1980년대 말까지는 ‘대원각’이라는 이름으로 정치인·기업인 등 장안의 명사들은 물론 외국인들이 즐겨 찾던 요정이었다.

하지만 대원각의 주인이던 고(故) 김영한씨가 법정스님의 수필집 ‘무소유’를 읽고 감동한 후 대원각 부지를 시주하면서 절로 바뀌었다. 길상사에서는 불도 체험, 수련회 등 수행교육과 미술대회, 콘서트, 템플스테이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 진행돼 도심 속 불교문화 전파공간으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각양각색의 외국 대사관저를 구경하는 호사는 덤이다.

성북을 산책하다 발이 피곤하면 전통찻집 수연산방에 들러 마른 목을 축일 수도 있다. 수연산방은 1933년부터 1946년까지 소설가 이태준이 ‘달밤’ ‘황진이’ 등의 작품을 집필한 곳이다. 지금은 이태준 선생의 외종손녀가 같은 이름으로 전통찻집을 운영하고 있다. 평범한 한옥으로 수십 년 전 서울의 반가를 찾은 느낌이 드는 찻집이다. 한방차의 값이 한 잔에 1만원 안팎으로 다소 부담스런 가격이나 색다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글·사진=우현석객원기자

한국가구박물관 곳간채의 광창. 주방 격에 해당하는 이곳에서는 브래드 피트 부부 등 유명인들이 식사를 하고 가기도 했다.한국가구박물관 곳간채의 광창. 주방 격에 해당하는 이곳에서는 브래드 피트 부부 등 유명인들이 식사를 하고 가기도 했다.


한국가구박물관의 사대부방. /사진제공=한국가구박물관한국가구박물관의 사대부방. /사진제공=한국가구박물관


가구박물관 안에는 책상에 해당하는 서안을 비롯해 많은 고가구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제공=한국가구박물관가구박물관 안에는 책상에 해당하는 서안을 비롯해 많은 고가구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제공=한국가구박물관


길상사는 법정스님이 만년을 보낸 곳으로 1980년대 말까지는 ‘대원각’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던 요정이었다.길상사는 법정스님이 만년을 보낸 곳으로 1980년대 말까지는 ‘대원각’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던 요정이었다.


최수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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