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우리는 만기 1년 이하의 단기국채나 정기예금을 무위험자산 혹은 안전자산으로 생각하고 있다. 60세 이상의 사람들이 금융자산 중 85%를 정기예금으로 가지고 있는 것도 안전한 자산이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무위험자산은 절대적으로 하나가 있는 게 아니라 목표에 따라 종류가 달라진다. 특히 생애설계의 기간이 길어지는 장기에는 무위험자산도 상대적으로 달라짐을 유의해야 한다.
노후에 생활비가 매월 300만원이 필요할 때 어떤 것이 안전한 자산운용일까. 우선 2% 금리의 1년 만기 국채나 예금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이 경우 18억원이면 매월 이자가 300만원이 된다. 문제는 1년 후에는 새로 발행되는 예금을 가져야 하는데 그때 금리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10년 후에는 그 불확실성이 더욱 커진다. 금리가 10%로 오르면 한 달 이자가 1,500만원이나 되지만 반대로 금리가 0.1%로 하락하면 한 달 이자가 15만원이 된다. 결코 안전한 자산이 아니다.
20년 만기의 장기국채를 보유하는 경우에는 금리가 3%라고 하면 12억원 국채를 사 두면 20년 동안 매월 3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중간에 금리가 오르든 내리든 상관없다. 이처럼 장기 생애설계에서는 만기가 긴 국채가 나의 생활을 안전하게 보장해주는 안전자산이 된다. 하지만 10년 후에 물가가 30%나 올라서 생활비가 더 많이 들어가게 됐다면 장기국채도 나의 생활을 안전하게 보장해주는 자산이 못 된다. 하지만 20년 만기의 물가연동국채는 물가상승률만큼 이자를 더 주므로 물가에 따라 변하는 생활비를 따라 갈 수 있다. 물가연동국채는 20년 만기 고정금리 국채보다 더 안전자산이 되는 셈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해리 마코위츠의 평균-분산 최적화 모형에서처럼 단기로 자산을 배분할 때는 단기국채나 정기예금이 무위험자산이 된다. 우리는 대부분 이 개념을 머리에 두고 있다. 하지만 ‘장기’에 걸쳐서 실질금리가 변하든지 물가가 불확실하든지 혹은 주가수익률이 평균회귀성향을 보이는 실제의 경우 이 개념은 맞지 않다. 우리의 생애설계에 맞춰 자산배분을 할 때 단기자산은 더 이상 안전한 자산이 아니다. 장기 물가연동채권, 연금, 장기 고정금리 채권, 장기 현금흐름이 있는 자산, 주식 등이 오히려 안전한 자산이 된다. 자산운용기간을 짧게 하느냐 길게 하느냐에 따라 안전자산도 상대적으로 달라지는 것이다. 장기 노후설계를 할 때는 보유자산도 같이 길게 변해야 한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