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촌놈의 진수성찬

[식담객 신씨의 밥상] 스물두 번째 이야기 '뷔페'



“자, 이상으로 00 장학회 장학금 수여식을 마치겠습니다. 점심식사는 00뷔페에서 진행할 예정이오니, 모두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 신대두와 안상돈은 마주보며 조그만 함성을 지릅니다.


“오, 예!”

1992년 고등학교 2학년 가을, 기대하지 않았던 도움을 받았습니다.

버겁게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사정을 아셨던 선생님께서 지역장학생으로 나를 추천해 주셨던 겁니다.

같은 학교 옆반 상돈이도 나와 비슷한 상황으로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당시엔 꽤 컸던 장학금 30만원을 받고, 난생 처음 뷔페식당까지 가보게 되었습니다.

바닷빛 푸르른 하늘 아래, 발걸음이 사뿐합니다.

볼을 매만지는 바람이 다정스럽습니다.

식당에 들어서 자리를 잡습니다.

접시를 집어들고 음식 테이블을 바라보자 말이 안 나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음식의 규모에 비해, 내 머리통 만한 접시는 너무 작아 보입니다.

그래도 걱정 없습니다.

국민학교 4학년 때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뷔페에 가면 처음에 김밥이랑 불고기 같은 게 있어. 여러분이 아주 좋아하지? 그거 절대 집으면 안 돼. 진짜 맛있는 건 뒷쪽에 있어. 회 같이 비싼 거!”

7년 전 선생님의 이야기대로, 성큼성큼 회가 있는 쪽으로 향합니다.

맛깔스런 김밥, 불고기, 소세지, 갈비, 해파리냉채, 잡채, 수육, 꼬치, 전을 지나칠 때마다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래도 저런 잔치 음식들은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녀석이 기다리고 있다는 기대감이, 망설임을 떨쳐냅니다.

‘도대체 회라는 건 얼마나 맛있길래!’

정말 후반부에 회들이 놓여 있습니다.

광어, 도미, 우럭, 참치에 처음 보는 조개들도 보입니다.

접시에 담을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은 바다생물들을 쌓습니다.

자리로 돌아와 보니 상돈이의 접시엔 내가 그냥 지나친 김밥과 갈비찜, 튀김이 수북히 담겨 있습니다.

“에이, 너 뷔페 처음이구나. 김밥이랑 고기 같은 걸로 배 채우는 거 아니다.”

“와, 대두 넌 뷔페 와봤었냐?”

상돈이가 부러운 눈으로 바라봅니다.

싱긋 눈웃음으로 대답하고, 회를 한 조각 입에 넣습니다.

“읔!”

말캉하고 비릿한 맛이 입 안을 휘젓습니다.


대체 뭐가 맛있다고 이것만 먹으라고 했는지 선생님 말이 이해가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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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더 씹다 보면 뭔가 좋은 맛이 날 거라고 믿으며, 이것 저것 씹어 봅니다.

하지만 생선회를 태어나 처음 먹어보는 청소연에게 생선들의 맛은 거기서 거깁니다.

이내 역한 느낌에 먹기를 포기합니다.

“대두야, 음식 남기면 벌금 물어야 한다는디?”

“이런, 젠장 맞을!”

비린 회를 계속 먹다 보니 속이 뒤집힐 것 같습니다.

상돈이가 먹는 불고기와 소세지가 엄청 맛나 보입니다.

“근디 대두 너는 회 정말 좋아하나벼? 초장도 없이 회만 먹냐?”

“엥? 초장이라니?”

“회를 초장에 찍어 먹어야지, 맨것만 비려서 어떻게 먹는댜?”

“아... 그게 내가 태어나 오늘 회 첨 먹는다.”

상돈이가 딱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진작 알았으면 내가 음식 담을 때 얘기해 주는 건디, 뷔페는 음식 한 번 가져오면 그걸로 끝이라더라.”

“어쩌겠냐? 무식한 내 탓이지. 나 김치 조금만 줘라, 비려서 더는 못 먹겠다.”

“어떡하냐? 뷔페는 자기가 담아온 것만 먹는 거래. 다른 사람들도 전부 자기 접시 것만 먹고 있잖여.”

벌금 때문에 꾸역꾸역 회를 씹지도 않고 삼킵니다.

고역도 이런 고역이 없습니다.

잠시 후 내 접시에 김밥 두 조각이 슬며시 올라옵니다.

상돈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대두야, 딴 사람들 보기 전에 얼른 먹어. 내가 같이 그 회 먹어주면 좋겠는디, 벌금 때문에 그건 무섭다.”

“고마워, 상돈아. 너 정말 좋은 친구였구나.”

20여 분이 지나, 간신히 생선회를 다 삼킵니다.

회가 회충보다 역겨운 순간입니다.

뷔페식당을 뒤로 하고 학교로 향하는 길, 조심스레 상돈이에게 말을 건넵니다.

“상돈아, 우리 학교 앞에서 라면 하나만 먹고 가자. 내가 낼게.”

“그려, 나도 기름진 것만 먹었더니 속이 울렁댄다. 라면에 김치 잔뜩 먹어 보자고.”

하늘빛처럼 파란 마음을 가진 친구를 둔 것 같아, 마음이 참 배부른 순간이었습니다. /식담객 analogoldman@naver.com





<식담객 신씨는?>

학창시절 개그맨과 작가를 준비하다가 우연치 않게 언론 홍보에 입문, 발칙한 상상과 대담한 도전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어원 풀이와 스토리텔링을 통한 기업 알리기에 능통한 15년차 기업홍보 전문가. 한겨레신문에서 직장인 컬럼을 연재했고, 한국경제 ‘金과장 李대리’의 기획에 참여한 바 있다. 현재 PR 전문 매거진 ‘The PR’에서 홍보카툰 ‘ 미스터 홍키호테’의 스토리를 집필 중이며, PR 관련 강연과 기고도 진행 중이다. 저서로는 홍보 바닥에서 매운 맛을 본 이들의 이야기 ‘홍보의 辛(초록물고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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