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조강(祖江)



하류의 강은, 늙은 강이다 /큰 강의 하구 쪽은 흐려진 시간과 닿아 있고 /그 강은 느리게 흘러서 순하게 소멸한다.(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 중에서) 바다로 소멸하기 직전의 강을 ‘늙었다’고 한 문인의 표현이 이채롭다. 강원도 태백 등에서 발원해 서쪽으로 흐르는 한강은 그 끝에 이르러서 북에서 흘러온 임진강과 만나(교하·交河) 하나를 이루고 결국 강화도 북쪽 교동도를 거쳐 바다로 사라진다. 김훈의 세설(世說)뿐 아니라 오두산 전망대가 있는 교하 이후의 한강을 예부터 ‘할아버지 강(조강·祖江)’이라고 불렀다.


조강의 두 아들은 임진강과 한강이며, 임진강의 지류 한탄강이나, 남한강과 북한강은 손자에 해당한다. 조강에서 대표적인 지역은 두 강뿐 아니라 김포시와 인천시를 잇는 대형 수로인 염하(鹽河)와 맞닿아 있는 김포시 월곶면 조강리다. 서부전선의 애기봉 전망대와 가까운 조강 나루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한양을 드나드는 주요 길목이었다. 특히 17·18 세기 경강(京江) 상인들이 전국에서 수집한 물산을 한양 성내로 반입하기 위해 이 조강 나루에서 물 때를 기다려야 했고 당시만 해도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밀물의 힘이 서빙고까지 이르렀고 서해의 유명한 조수 간만으로 강을 거슬러 올라가기에는 무리가 있어 상인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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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반도 분단의 현대사 속에서 조강은 잊힌 강이 됐다. 남과 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면서 강 양쪽에서 서로 오고 가지 못하면서 사실상 일반인들의 접근이 쉽지 않아지면서부터다. 1953년 맺어진 정전 협정에는 당시 조강 지역의 특성을 반영해 남북 쌍방이 조강의 상대 기슭까지 민간 선박의 항행을 개방한다는 규정이 있다. 덕분에 고기잡이나 뱃놀이를 할 수 있다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사문화된 지 오래다.

김포시가 이 조강의 과거와 오늘을 보여주는 45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한다고 한다. 주민 홍보용뿐만 아니라 남북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평화문화도시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통일전진 기지로 위상을 높여나간다는 구상에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사업 구상으로 독특함의 차원을 넘어 조강이 역사 속의 제 이름을 찾는 그 날을 기대해본다. /온종훈 논설위원

온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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