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시간이 가장 느리게 흘러가는 장소였던 북창동의 시계가 빨라지면서 북창동이 가진 역사성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실 북창동은 6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 서울을 이해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장소다. 조선시대 중심 가로(街路) 중 하나인 ‘남대문로’와 대한제국 때 형성돼 일제강점기를 거쳐 1970년대까지 서울에서 가장 번화했던 거리 중 하나인 ‘소공로’를 끼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제국의 길 ‘소공로’, 가장 번화했던 오피스타운=소공로는 대한제국 출범 이후 황궁이 경복궁에서 덕수궁으로 옮겨오면서 생긴 길이다. 당시 중심 상업 가로였던 남대문로와 세종대로를 잇기 위해 뚫은 길이다.
이후 이 길은 일제시대 경성(현 서울) 행정의 중심인 경성부청(현 서울시청)과 식민지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미쓰코시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본점)을 연결하면서 일본인 오피스 거리를 형성하게 된다. 지금도 당시의 흔적이 남아 있다. 현재 중구 소공로 97(소공동 112-20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한일빌딩’에는 일제 강점기 택지개발과 주택사업을 담당했던 ‘경성토지경영주식회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조선건축회의 기관지였던 ‘조선과 건축’ 1929년 8월호에는 경성토지경영주식회사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실려 있는데 당시에는 3층짜리 건물이었다. 이후 가로·세로 증축을 통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췄다.
이뿐만 아니라 소공로 일대에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보여줄 수 있는 건축물들이 여럿 남아 있다. 한일빌딩 양옆으로 나란히 늘어선 6개의 빌딩은 1960~1970년대 세워진 오피스빌딩으로 추정된다.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는 “현재 기준에서 보면 굉장히 낡고 누추한 건물로 볼 수 있지만 1960~1970년대에는 가장 번화했던 오피스타운”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번화했던 소공로는 강남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고 강북과 강남을 연결해주는 남산 3호 터널이 뚫리면서 쇠락하기 시작한다. 소공로가 강남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통과점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안 교수는 “소공로는 대한제국 출범과 일제 강점기, 한국의 경제성장기를 모두 경험한 굉장히 중요한 거리”라며 “한국의 근현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공로를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제시대 조선과 일본인 상권의 교차점, ‘남대문로’=소공로가 한국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오피스타운이었다면 남대문로는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상업의 중심 가로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특히 일제시대 때는 전통적인 조선의 상업가로와 서서히 확장되는 일본인 상권이 만나는 장소였다.
한인 상권의 흔적을 보여주는 건축물은 코트야드메리어트 서울 남대문 호텔 바로 앞에 위치한 2층 한옥 상가다. 191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2층 한옥은 최근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2층 한옥은 벽돌조의 몸체와 기와지붕을 하고 있으며, 한옥 진화의 마지막 단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안 교수는 “시대가 바뀌면서 한옥의 모습도 변해왔다”며 “2층 한옥이 벽돌을 건축 재료로 사용한 것은 고밀도화된 도시에서 화재의 위험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안타까운 점은 이처럼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2층 한옥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코트야드메리어트호텔이 들어서기 전 남대문로에는 3채의 2층 한옥이 나란히 서 있었다. 지난 2012년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는 2층 한옥의 역사적 의미를 고려해 이를 복원하는 조건으로 호텔 인허가를 내줬다. 하지만 현재 나머지 두 채는 사라지고 한 채만 외롭게 서 있다.
이에 대해 중구청 관계자는 “중구청 도시건축공동위원회에서 서울시의 계획대로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남대문로에는 일본인 상권의 세력 확장을 보여주는 건물들도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남대문로 19에 위치한 건물이다. 이 건물은 일본을 대표하는 인공 조미료 업체인 아지노모도가 1930년대 서울 본사로 사용했던 곳이다.
아지노모도 홈페이지에 따르면 아지노모도는 1931년에 한국에 처음 진출했으며 1933년 4층짜리 새 건물을 신축해 사무실을 옮겼다고 나와 있다. 안 교수는 “남대문로는 세력을 넓혀가던 일본 상권과 전통적인 조선 상권이 만나는 장소였다”며 “아지노모도 본사뿐만 아니라 남대문로 일대 전면의 폭이 좁고 황토색 타일을 사용한 2~3층짜리 건물들은 일제 강점기 시절의 건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건축물들을 보존할 수 있다면 서울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보존과 개발의 경계에 선 북창동=최근 북창동 일대에는 비즈니스호텔을 비롯한 숙박 시설들이 대거 들어서고 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어 어디로든 이동이 편리해 숙박 시설이 들어서기에는 최적의 입지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숙박 시설들이 북창동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는 고려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자리를 잡고 있다는 점이다.
한 예로 부영은 삼환기업으로부터 과거 대한제국 영빈관이 있던 터를 사들여 호텔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부영은 최근 대한제국 영빈관 터와 붙어 있는 소공로 일대 7개 건물을 모두 사들였다. 이 건물 중에는 과거 경성토지경영주식회사가 있었던 한일빌딩도 포함돼 있다. 부영은 이 건물들을 모두 헐고 호텔을 신축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해당 건물들은 임차인들이 나가 텅텅 비어 있다.
남대문로 일대도 상황은 비슷하다. 남대문로는 미관지구로 지정돼 있기 때문에 재개발시 건축선을 현재 인도에서 3m 뒤로 물러야 한다. 현재 상황을 감안하면 과거 일제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건축물들이 모두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 지난해 3월 사우스게이트하스피탤리티주식회사가 사들인 남대문로 19-1에 위치한 건물은 임차인들을 내보내고 있어 조만간 숙박 시설로 재개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바로 옆의 건물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안 교수는 “북창동 일대에 들어서는 중저가 비즈니스호텔들이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데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만 경제적 이익만 추구하다 보면 서울이라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가치를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역사도시서울위원회 위원을 맡은 김기호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도 “그동안 도시 계획이 개발 중심으로 세워지다 보니 미관지구를 일괄적으로 진행하면서 생기는 문제”라며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가로에 대해서는 세심하게 보존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개발만 가지고는 도시의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며 “유럽이나 미국의 많은 도시들처럼 서울이 가진 역사성을 잘 활용해 품위 있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가지 긍정적인 변화의 가능성은 보인다. 증축을 계획하고 있는 한국은행이 최근 문화재위원회의 의견을 받아들여 남대문로에 위치한 건물에 대해 기존 건축선을 지키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안 교수는 “한국은행의 사례가 남대문로 일대 역사적인 건축물의 보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