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법원과 법무부 등에 따르면 1968년 한국에서 태어난 김모씨는 17살이 된 1985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후 10년 동안 병역 의무를 미룬 채 1995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귀화 후 미국에서 미국인으로 계속 살았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겠지만 1997년 돌연 귀국해 한국에 눌러앉는다. 김씨가 이후 외국에 출국한 것은 2003년 8월 한 번뿐이었다. 한국에선 영어 강사 등으로 버젓이 영리 활동을 했다.
특히 미국 시민권 취득 후 7년간은 귀화 사실을 숨긴 채 ‘한국인’ 행사를 했다. 외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은 우리나라 국적을 잃기 때문에 바로 국적상실 신고를 해야 하지만 이를 계속 미룬 것이다. 이 때문에 2002년에야 김씨의 한국 국적은 공식 말소됐다.
병역 의무는 2006년 만38세가 되자 자동 면제됐다. 미국 시민권을 얻어 군대를 면제 받은 가수 유승준씨 사례와 판박이다. 김씨는 미국 귀화 후에도 우리나라에 살면서 돈까지 벌었으니 유씨보다도 낫다고 볼 수 있다.
김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14년 “다시 한국인이 되고 싶다”며 국적 회복 신청을 했다. “미국 귀화를 한 유일한 이유는 한국에 있던 여자와 결혼해서 미국으로 초청하기 위해서였고 병역 기피 목적은 없었다”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병역을 기피할 목적의 국적 상실이 명백하다’며 국적 회복을 불허했다. 김씨는 이에 불복해 소송까지 냈지만 법원 역시 김씨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윤경아 부장판사)는 지난 18일 “병역 의무가 생기기 1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했고 미국 귀화 이후에 한국에서 계속 체류해온 점, 병역 의무가 면제된 지 2년 만에 국적 회복 신청을 한 점 등을 비춰보면 병역 기피 목적이 다분하다”며 김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김씨의 꼼수는 법무부와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지만 △7년간 귀화를 숨긴 채 한국인 행세를 했던 점 △병역 의무는 이행하지 않고 한국에서 경제 활동을 했던 점 등을 고려하면 제2의 김씨를 막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귀화 후 바로 국적 상실 신고를 안 하면 불이익을 주고 병역 의무 이행 전 국적을 포기한 사람은 한국에서 취업을 제한하는 방안 등이 그것이다.
병무청도 이런 문제를 의식해 지난해 9월 국정검사 이후 “병역 회피 목적의 국적 포기를 제재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책은 감감무소식이다. 또 다른 소관 부처인 법무부는 “일단 병무청 대책을 기다리겠다”는 입장이다.
병무청 관계자는 “현재 관련 연구용역이 진행 중이며 용역 보고서가 나오는 대로 관계부처와 논의해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국적을 포기해 병역을 면제 받은 남성은 2013년 3,075명, 2014년 4,386명, 지난해 2,706명 등 매년 수천명에 이른다. 특히 올해는 7월까지 4,220명으로 급증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