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재테크 책을 열독한 주부 박은호(가명) 씨. 박 씨는 책에서 배운 ‘4개의 통장’을 활용한 돈 굴리기를 직접 실행하기 위해 은행을 찾았지만 통장을 하나도 발급 받지 못했다. 해당 은행에서는 박 씨에게 통장 개설 목적을 물어본 뒤 그에 맞는 서류 제출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또 일정 소득이 없는 주부는 통장을 개설하더라도 1일 이체 한도가 100만원이 넘지 못한다는 설명 듣자, 박 씨는 아예 통장 개설을 포기했다. 박 씨는 “관련 기사를 검색해 보니 ‘통장고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주부들에게 은행 통장 발급의 문턱이 높아져 있었다”며 “4개의 통장을 활용한 재테크는 남편에게 맡겨야겠다”고 말했다.
3일 금융계에 따르면 재테크 책에 하나의 기본 법칙처럼 나오는 ‘4개의 통장’ 또는 ‘통장쪼개기’ 기반 재테크가 소득이 일정하지 않은 주부와 학생들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주부는 직장인 남편을 활용하고, 학생들은 취업 후에 시도하는 게 낫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재테크 책만 보고 무턱대고 은행을 찾아 갔다가는 헛걸음만 하고 돌아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주부 박 씨가 시도하려던 4개의 통장을 활용한 재테크는 다음과 같다. 4개의 통장이란 월급, 재테크, 지출, 비상금 명목으로 통장을 4개로 나눈 뒤 돈을 굴리는 방식이다. 월급통장은 월급 수령에 쓰이고 재테크 통장은 펀드나 예적금 등을 관리하는데 쓰인다. 지출 통장은 체크카드나 신용카드와 연계해 그달 생활비 지출에 사용되며, 비상금 통장은 말 그대로 급전이 필요한 일에 쓰인다. 급여가 들어온 다음날 월급 모두를 나머지 3개의 통장에 분산해 넣어두고 월급통장 잔액은 0원이 되도록 하는 것이 운용의 핵심이다. 이를 통해 한정된 월급 내에서 자금운용을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고, 자금 흐름 또한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에 재테크족(族) 사이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하나의 필수 수단으로 불린다.
하지만 이 같은 4개의 통장을 활용한 재테크는 지난 연말부터 운용이 다소 까다로워졌다. 은행들이 대포통장을 없애기 위해 신규통장 개설 요건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실제 제아무리 유명한 대기업 소속 사원이라도, 요즘 은행창구에서 통장을 개설하려면 개설 이유 등을 설명해야 하고 소득증빙서류나 명함 등을 제출해야 한다. 게다가 직장이나 자택 근처의 은행 지점 외에는 신규통장 개설을 하지 못하도록 한 은행이 많기 때문에 체감 문턱은 더욱 높아진 모습이다.
특히 주부를 비롯해 일정한 직업이 없는 이들은 통장 개설 자체가 쉽지 않게 됐다. 물론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주부의 경우 관리비나 전기요금 같은 공과금 납부 영수증을,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의 경우 고용주와 작성한 근로계약서를 각각 제출하면 통장을 발급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소득이 일정하지 않은 이들이 발급 받는 통장은 온라인이나 자동화입출금기(ATM) 이용시 30만원, 은행 지점에서 이체시 100만원이 각각 일일 이체 한도다.
이 때문에 회사에 다니는 남편을 통해 통장 쪼개기 재테크에 나서는 주부들이 늘고 있지만, 몇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우선 주부가 직접 통장을 관리하려면 남편 명의의 공인인증서를 이용해야 하는데, 스마트폰 카메라로 공인인증서를 찍어 보관할 경우 해킹에 따른 보안 위험이 있다. 1인당 하나씩 제공되는 일회용비밀번호(OTP) 생성기를 아내가 관리한다면, 남편은 비교적 큰 돈을 송금할 경우 매번 은행 지점이나 ATM을 찾아야 해 번거로울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