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한진해운 법정관리 후폭풍]금융논리 앞세워 구조조정 헛발질..."해운업 무지가 물류대란 자초"

■세계로 확산되는 물류대란...근본 원인은

업황 어려운데 회사채 신속인수로 되레 경영 악화

어설픈 지원책 남발하다 위기 조기진화 기회 놓쳐

법정관리로 '조선-해운-서비스' 시너지 붕괴 비판도





한진해운이 법정관리(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가면서 전 세계에서 물류대란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이번 사태의 근본원인으로 해운업에 대한 금융당국의 무지를 지목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운업에 대한 총체적 이해 없이 어설픈 지원대책을 남발해 위기를 조기에 진화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고 법정관리 개시에 앞서 한진해운 파산이 글로벌 물류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지 못해 화를 키웠다는 비판이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컨트롤타워 격인 금융위원회와 지원부처 격인 해양수산부가 서로 엇박자를 냈다”며 “금융위는 해수부를 무시했고 해수부는 팔짱만 끼고 보면서 최악의 물류대란을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헛발질 지원대책=해운업에 대한 구조조정은 7년 전인 2009년부터 시작됐다. 글로벌 해운시장에서 공급이 수요를 앞질러 당분간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해운업을 상시 구조조정 업종으로 지정해 다양한 지원책을 쏟아냈다.

실제로 2009년 중고선박을 일단 매입했다가 대여해주는(세일 앤드 리스백) ‘선박펀드’ 제도가 도입됐고 이어 △회사채시장 정상화 지원대책(2013년) △해양금융종합센터 설립(2014년) △한국해양보증보험 설립(2015년) △선박 신조(新造) 지원 프로그램 도입(2015년) 등의 지원제도가 줄지어 시작됐다.

문제는 이런 지원책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해운사들을 회생시키는 데 역부족이었다는 점이다. 2013년 도입한 ‘회사채 신속 인수제도’가 대표적이다. 이 제도를 활용할 경우 당장 회사채 만기 부담은 덜 수 있지만 금리 부담이 연 12% 수준까지 치솟아 중장기적으로 이자 부담이 2배 이상 늘어난다는 부작용이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금리 장사를 한 셈”이라며 “손해를 보지 않아야 하는 채권단 입장도 이해하지만 해운업 시황이 도저히 회복되지 않아 경영 여건이 더 어려워지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말했다.


자국 해운사를 지원하기 위해 250억달러(약 27조9,000억원)의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던 중국과 달리 ‘찔끔’ 대책으로 위기를 이어가다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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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관리 이후의 혼란도 해운업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진해운 선박이 전 세계 곳곳에서 압류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압류금지명령(스테이오더)’을 각국 법원에서 승인받도록 준비했어야 했는데 이런 조치 없이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도록 떠밀었다. 또 현대상선 선박 13척을 긴급히 대체 투입하기로 했지만 컨테이너선 마련 등 사전 준비가 돼 있지 않아 실제 운항에 일주일가량이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끊어진 조선-해운-서비스 삼각편대=한진해운의 법정관리에 따라 ‘조선-해운-해운업 서비스’로 이어지는 산업의 선순환 고리가 깨졌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한국은 조선 ‘빅3(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와 양대 국적선사(한진해운·현대상선), 해운서비스 기업으로 구성된, 해양산업 분야에서 모두 경쟁력을 갖춘 전 세계 유일한 국가”라며 “구조조정 책임자 중에 이런 산업 논리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꼬집었다. 해운업계의 또 다른 한 관계자는 “해수부는 전통적으로 정부 내에서 영향력이 약하고 산업통상자원부 역시 기획재정부 출신 관료가 수장을 맡고 있어 금융논리에 치우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한편 전 세계적으로 진행된 해운 치킨게임에서 한진해운이 결국 좌초하면서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버텨온 경쟁사들은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특히 한진해운과 비슷한 시장을 두고 경쟁하던 아시아권 선사들의 실적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진해운의 주력 노선인 부산~LA 노선 운임은 법정관리 신청 이후 1FEU(40피트 컨테이너 1개)당 1,100달러에서 1,600달러로 45.5% 올랐다. 미국 동부노선 운임은 같은 기간 1FEU당 1,600달러에서 2,400달러로 50% 상승했다.

이에 경쟁사들의 주가도 뛰고 있다. 세계 5위 해운사인 대만 에버그린 주가는 이달 1일 대만 증시에서 10% 상승했다. 9위 회사인 대만 양밍 역시 대만 증시에서 주가가 7.0% 뛰었다. 10위 업체인 홍콩 OOCL 주가도 홍콩 증시에서 7.6% 올랐다.

서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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