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파리 함락을 막은 택시들



전쟁이 터진 뒤 불과 38일. 프랑스 파리가 공포에 젖었다. 독일군의 신속한 진격으로 함락 위험에 빠졌기 때문이다. 피난민 대열이 꼬리를 물었다. 독일군이 파리 외곽 37㎞까지 진출한 상황. 프랑스 정부가 독일과 강화조약을 준비 중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다만 전황은 나쁘지 않았다. 프랑스군이 독일군을 맞아 선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영국이 보낸 유럽 파견군 역시 자리를 잡고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고비를 맞은 프랑스군은 고민에 빠졌다. 예비대를 편성하고 전선에 투입하는 작전을 세웠으나 문제는 이동수단. 철도가 독일군의 포격으로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파리 방어사령관 갈리아니 장군이 아이디어를 냈다. ‘택시!’


1914년9월6일 밤 10시, 택시 동원령이 떨어졌다. 승객들은 검문 경찰에게 항의하지 못했다. 국가적 비상 상황이었으니까. 다만 일부 기사가 경찰에 물었다. “요금은 어떻게 되는 거요? 정액제와 정찰제, 둘 중 어느 거요?” 사전에 지시를 받은 경찰은 자신 있게 답했다. “요금은 법에 따라 지불된다고 합니다. 기사님” 경찰이 불러 세운 택시 10여대가 전선으로 떠난 후에는 기사들이 제 발로 모여들었다. 긴급 방송을 들었기 때문이다.(파리의 택시회사들은 훗날 정상 요금의 27%만 받자고 의결했다.

2기통 9마력짜리 르노 택시는 병사를 5명씩 실어날랐다. 모두 600여대의 택시가 이틀 밤 동안 수송한 병력은 약 6,000여명. 택시들이 운송한 병력은 마른 전선에 투입됐다. 독일군은 끊임없이 투입되는 증원 병력에 혀를 내둘렀다. 기대하지 않았던 추가 지원병은 파리 방어전이었던 마른 전투의 승패를 갈랐다. 프랑스·영국 연합군의 완승. 단기전을 모색했던 독일의 계획, 즉 슐리펜 계획도 뒤틀어졌다.

요즘으로 치면 기계화부대의 효시인 마른 택시 부대 긴급 편성 사실을 몰랐던 독일군은 ‘적이 예상 외로 강하다. 매일 같이 증원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보고를 올렸다. 독일군의 속전속결 전략을 깨트린 이 전투는 제 1차 세계대전의 흐름을 갈랐다. 곧 함락될 것 같았던 파리는 위기를 넘겼다.


프랑스가 ‘마른의 기적’으로 기억하는 이 전투에 참가한 양측의 병력은 약 256만명. 독일군 27개 사단 149만명에 프랑스군 39개 사단과 영국군 6개 사단 병력 107만명이 맞섰다. 기세등등하던 독일군의 공세는 오래 가지 못했다. 택시들이 실어나른 증원군 병력은 전선 곳곳에서 맹활약했다. 프랑스를 집어 삼킬 것 같았던 독일군의 예봉은 꺾이고 말았다. 마른 전투 이후 전선은 지리한 참호전 양상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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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반론도 있다. 양측의 사상자만 51만 9,000여명. 수많은 병사들이 죽어 나간 마른 전투에서 6,000여명의 프랑스 증원군이 커다란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분석이 없지 않다. 그래도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택시들이 부지런히 전장을 오가는 가운데 파리 시민들이 뭉쳤다. 전쟁기간 내내 프랑스 국민들은 자기 승용차와 트럭, 심지어 경주용 차까지 동원해 군수물자 수송에 나섰다. 파리 시민들은 우마차에서 말이 끄는 호화 마차까지 자발적으로 내놓았다.

마른 전투는 제 1차 세계대전의 전환점이었다. 전투의 기동력은 말 대신 기계로 바뀌었다. 필요는 발명을 낳는다고 했던가. 전쟁은 기술 혁신을 이끌었다. 전쟁이 끝날 무렵 각종 기계, 즉 트럭과 항공기의 속도가 두 배 가량 빨라졌다. 제 1차 세계대전 동안 영국은 5만5,000대, 프랑스는 6,800대, 이탈리아는 2만대, 독일은 4만8,000대, 미국은 1만5,000대의 각종 항공기를 생산해냈다.(다니엘 예긴, ‘황금의 샘’ 제 1권 291쪽)

세상을 변화시켰다는 1차 세계 대전에서 말 4,000마리의 힘으로 표시(마력·馬力)되던 미군 1개 사단의 기계력은 2차 대전에서는 18만7,000마력으로 늘어났다. 요즘은 그 15배가 넘는다. 항공 지원까지 감안하면 정도에 따라 100배가 넘는 경우도 있다. 수요가 늘면 가격이 내려가야 하는데 정반대다. 자원이 한정된 탓이다. 국제적으로 유전을 둘러싼 분쟁이 갈수록 심해지고, 전쟁 무기 가격은 상승 일변도다.

질문을 아니 던질 수 없다. 전쟁과 무기에 쓸 돈을 사람을 위해 쓴다면? 세상은 좀 더 좋아질까. 글로벌 무기 상인들의 코 웃음 속에 인간은 파멸을 향해 돌진한다. 광기가 이성을 짓누르는 세상, 우리는 후손들에게 정신적·물질적 유산을 물려줄 수 있을까. 자신이 안 선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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