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미디어와 공생한 청담동 주식부자

김현수 증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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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부 기자의 가장 큰 고민은 주가다. 종목 기사를 써 놓고서는 잠을 설치기도 한다. 다음 날 주가가 반대로 움직이면 난감하다. 온갖 투자정보와 분석보고서를 바탕으로 기사를 썼음에도 주가는 내 맘 같지 않다. 한두 번도 아니고 기사와 주가가 반대로 움직이는 흐름을 타버리면 졸지에 해당 기자의 기사는 ‘리버스(역방향) 지표’가 돼버린다.

주식 투자자들의 고민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내가 사면 왜 주가가 빠지죠”라는 질문은 가장 흔한 투자상담 내용이다. 청담동 주식부자로 불린 이희진씨가 3년 가까이 주식 투자자들의 곁을 파고들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8월 초 서울경제신문이 금융당국이 이씨를 조사한다는 내용을 보도했을 때 이씨는 인터넷 방송에서 “금융당국의 전화 한 통도 없었다”며 조사가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유료 회원들은 이씨를 믿었다. 금융당국이 조사 과정에서 이씨에게 전화를 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 판단도 제쳐두고 말이다. 1인 미디어인 인터넷 방송이 방송의 대중성과 신뢰성으로 포장돼 사실 판단 기준을 흐릿하게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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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주식부자, 백만장자의 허상을 만든 것은 미디어다. 각종 매체에서 노출된 이씨의 화려한 허상은 대중에게 묘한 신뢰감을 줬다. 이씨가 본격적으로 미디어의 조명을 받은 것은 2014년 5월경이다. 한 경제TV의 수익률 게임에 등장한 이씨는 그해 경제TV 8명의 파트너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후 이씨는 경제TV의 관계사인 경제지 증권면에 전문가 그룹의 일원으로 소개되며 재야의 주식 투자자로 이름을 날렸다. 이듬해인 2015년 8월 말 이씨는 고액기부자로 다시 등장하며 ‘주식 투자로 성공한 청년사업가’로 소개됐다. 이씨가 미디어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6월 종편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면서부터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3채의 건물, 수십억 원에 달하는 슈퍼카, 수영장이 딸린 저택 등은 이씨를 주식 투자의 성공 모델로 만들었다.

이씨가 미디어를 이용해 만든 이미지는 미디어의 신뢰성과 혼동되며 투자자들을 끌어들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뢰성은 주식시장에서도 정보가 가장 취약한 장외 주식시장 거래에 이용됐다. 가난한 환경에서 나이트클럽 웨이터 등의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주식으로 자수성가한 ‘흙수저’ 출신이라는 이씨의 인생 스토리는 케이블TV와 종편 예능 프로그램에 좋은 소재가 됐다.

하지만 결과는 1,700억원의 불법 주식거래를 하고 원금 보장을 약속해 투자자들을 끌어모은 혐의로 검찰에 긴급체포돼 구속 영장이 청구됐다.

이씨가 미디어를 이용했지만 미디어도 이씨의 휘발성 높은 스토리를 이용했다. 어쩌면 이씨가 저지른 범죄의 방조자일 수도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터넷 방송 등에 휩싸여 급해진 미디어가 스스로 자정능력을 상실하지 않았을까 걱정이다. ‘대박’을 노리고 현혹된 개인투자자만을 탓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정보에 목마른 투자자들을 위해 미디어, 특히 경제 매체는 정보를 거르는 역할을 해야 한다. 우선은 나부터 돌이켜보고 반성한다.

김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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