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일제에 강탈당한 '우리 술 주권' 되찾아야

이화선 우리술문화원장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에 주세(酒稅) 신고세액이 3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단일 세목 가운데에서도 적지 않은 규모다. 금액만 놓고 본다면 가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술의 바다에 빠져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놀랄 정도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대하는 술에 이처럼 세금을 부과하고 국가의 주요 세원(稅源)으로 삼았던 것은 언제부터일까.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6년 9월1일, 일제는 조선총독부제령 제2호, 이른바 주세령(酒稅令)을 공포해 본격적인 대중 과세적인 식민지 조세정책을 시행한다. 이를 위한 예비단계로서 1909년에 이미 주세법을 공포해 주조면허제, 주세 부과, 주조장의 기업화 등 주조업 전반에 대한 통제와 세원 파악을 진행해나갔다. ‘통계년보’를 보면 조세수입 중 주세가 차지한 비중은 1910년 1.8%에서 1935년에는 30.2%에 달한다. 또한 가양주(家釀酒) 제조면허자의 수는 1918년 37만5,757곳에서 1932년에는 단 1곳으로 급감한다. 반대로 기업형 공장은 빠르게 늘어난다. 이는 주조업이 비조선주(非朝鮮酒)를 중심으로 집중된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징세 없이 자유롭게 주조하던 가양주의 맥은 끊기고 주류산업이 친일세력 또는 친일자본가들에게 집적된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비조선주라 함은 조선의 술에 대비된 말로 동령 제1조 2항은 “조선주라 함은 조선의 재래방법에 의해 제조한 탁주, 약주 및 소주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조선주라는 말은 이때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다.


일제의 주세령 공포로 말미암아 수천 년의 역사를 구가하던 한국 술은 하루아침에 청주라는 이름을 빼앗기고 재래방법은 곧 전근대적·비위생적·비과학적이라는 말로 치환돼 근대화·시정개선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어떻게 보면 술, 이 하나만으로도 한 나라의 여유로움과 궁핍함, 문화의 융성과 퇴보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광복 이후에도 우리 고유의 풍부한 술 문화와 그 전승의 맥락이 부활되지 못한 채, 조선주는 오늘날 전통주로 이름만 변경됐을 뿐 현행법과 제도 아래 더욱 견고히 박제되고 만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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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 아래 유입된 일본식 주조법은 오늘날 우리 술을 일본 술의 아류로 전락시켰고 첨가물로 인공의 맛을 낸 술이 우리 술의 주류(主流)임을 자처하는 폐해를 낳았다. 그 결과 한국 술의 국제 경쟁력은 자라날 수 없게 됐고 국민은 저가원료와 공정으로 만든 술과 건강에 유해할 수도 있는 각종 첨가물이 들어간 술이 우리 술인 줄 알고 마실 수밖에 없게 됐다.

주세령은 광복 이후에 여러 차례 개정을 거듭해 오늘에 이르고 있고, 우리나라 주류산업은 조세 규모만 해도 3조원 대를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우리 술의 품질과 문화 수준은 그에 상응하지 못하고 있다. 술은 음식문화를 풍요롭게 하고 사회 구성원 간 소통의 매개이면서 그 나라의 문화와 경제 코드가 돼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의 주류산업 정책은 가양주 문화와 작은 술도가의 확산을 통한 잠재력 배양을 지향하고 있다. 이제는 여기서 더 나아가 자연접종을 이용한 우리 술 본래의 주조방식이 장려되고 국민이 다양한 술을 제대로 판단해 선택할 수 있도록 주류산업 정책이 새로이 정립되기를 희망한다. 일제 강점기에 잃어버린 우리 문화와 자존심을 회복하고 국민의 건강을 지키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한국 술의 진정한 부활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화선 우리술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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