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남 탓하지 않기

박창명 병무청장

박창명 병무청장박창명 병무청장


“알파고의 완승이다. 알파고가 완벽한 대국을 펼치지 않았나 싶다.”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는데 해내지 못해서 아쉽다.”


지난 3월 열린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은 다수의 예상을 뒤엎고 인공지능의 승리로 끝났다. 세계 최정상급 바둑기사로 활동 중인 이 9단의 패배는 바둑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고도로 복잡하고 오묘한 바둑만의 세계를 인공지능이 따라오기는 역부족이라는 주장이 대세였던데다 단 한 판도 내주지 않겠다는 이 9단의 대국 전 호언에 무게가 실렸던 터라 파장은 더 컸다.

패배가 거듭되면서 이 9단은 사활을 걸고 대국에 임했다. 전체 5국 중 한 차례의 승리가 가능했던 것도 그 결과였다. 그러나 대중을 열광시킨 것은 천재기사의 결기와 집념만은 아니었다. 쓰라린 패배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스스로의 책임으로 받아들인 태도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리라. 이 9단의 장단점이 모두 공개된 반면 알파고의 기력은 베일에 싸인, 그래서 애초부터 불공정한 게임이었다는 주장도 그는 변명으로 삼지 않았다. 시종일관 깨끗한 승복만이 남았다.


최근 폐막한 리우올림픽 여자골프 금메달리스트 박인비도 마찬가지다. 부상으로 올 시즌 내내 부진에 시달렸던 그는 올림픽 출전권을 반납하라는 비난 여론 속에서도 묵묵히 갈 길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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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이 시급했지만 고통을 참아가며 훈련량을 늘렸고 부상으로 흐트러진 스윙을 다잡는 데 힘썼다. 메달을 따지 못할 경우 돌아올 비난과 질타는 불을 보듯 뻔한 터. 이쯤 되면 천하의 골프 여제라도 ‘안전한’ 길을 택했을 법했고 설령 그랬다고 해서 누가 뭐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마지막 4라운드를 마치고 박인비는 이렇게 말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통증이 없었던 적은 없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통증 때문에 못 친다는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선수로서 결과에 책임을 질 뿐 다른 이유를 대지 않겠다는 다짐이 아니었을까 한다. “한계에 도전하겠다”는 각오로 올림픽에 나선 그는 스스로의 다짐대로 한계를 뛰어넘는 결과를 일궈냈다. 누가 봐도 불리한 조건을 피하지 않고 얻은 승리였기에 더 값지고 위대했다.

남 탓하는 세태가 여전하다고 하지만 병무행정의 수장으로서 우리 젊은 세대를 보며 희망을 갖는다. 사실 이십 년 이상 머물러온 익숙한 환경과 가족·지인들을 떠나 생소한 군문(軍門)에 들어서는 것은 불안하고 두려운 경험일 수밖에 없다. 심심찮게 불거지는 고위공직자 자제들의 병역문제나 병역면탈 사건들을 보며 여전히 군대를 흙수저 논란과 연결시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이 땅의 청년으로서 주어진 병역 의무를 당당하게 감당하려는 대다수의 젊은이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들이야말로 남을 탓하기보다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마땅히 존중받고 우대받아야 하는 값진 청춘이다.

박창명 병무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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