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亞최대 가구박람회서 자취 감춘 한국업체

상하이박람회·中가구전시회

국내 대형 가구사 참가 전무

중기청 지원사들만 자리 지켜

국내 판매 소파 90%가 중국산

中외주로 이윤 남기는 구조 정착

해외진출 시도 없이 내수 안주

"韓, 판매자 아닌 구매자일 뿐"

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상하이국제가구박람회 인터내셔널관에 많은 인파가 몰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박해욱기자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상하이국제가구박람회 인터내셔널관에 많은 인파가 몰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박해욱기자





전 세계 가구 업계 종사자들은 매년 4월과 9월에 한자리에 모인다. 4월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9월은 중국 상하이의 ‘국제가구박람회’와 광저우의 ‘중국 가구 전시회’에 모여들어 전 세계 가구 트렌트를 살피고 새로운 거래처를 발굴한다. 특히 중국에서 열리는 이들 행사는 동양 최대 규모인 만큼 국내 가구업계 종사자들도 빠지지 않고 찾는다. 이들 행사에 참여한 전 세계 가구 브랜드만도 무려 2,000여개에 달하고, 참가 인원수만도 수만명에 이를 정도다.

그러나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이들 전시장을 둘러본 기자는 한국 가구사의 전시장을 찾을 수 없었다. 중소기업청의 지원금을 받은 12개 중소 가구업체들만이 국제관 구석진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 한샘과 리바트 등 국내 대표 가구 기업들은 단 한 곳도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내 가구 산업이 르네상스를 맞이했다’는 업계 안팎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국내 가구사들은 정작 글로벌 가구 시장의 최전선에서 자취를 감춘 것이다. 이는 국내 가구 산업이 처해있는 현주소로, 내수 의존도가 높아지고 중국 외주화 현상이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는 까닭이다.


경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국내 가구산업은 우리 국민들이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국내 가구사들이 자신들의 기술력으로, 국내 인력을 고용해 만든 가구를 해외에 수출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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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상하이국제가구박람회 한국관 부스 모습. 이번 박람회에는 국내 중소 가구업체 12곳만 참여했다. /박해욱기자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상하이국제가구박람회 한국관 부스 모습. 이번 박람회에는 국내 중소 가구업체 12곳만 참여했다. /박해욱기자


실제 박람회 현장에서 만난 국내 가구업계 관계자도 “외환위기 당시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가구업계가 내놓은 해결책은 비용절감을 통한 생존전략이었다”면서 “원가절감을 위해 시도한 중국 외주화가 보편화된 이후 부동산 시장 호황을 겪자 가구산업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국내 가구사들은 파이가 커진 내수 시장만으로도 충분히 이윤을 남길 수 있게 되자 안주하고 있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비용절감과 커진 내수시장으로 안정적인 기업 경영이 가능해진 해외 진출이라는 무리수를 두지 않는 셈이다.

최근 국내 가구사들이 가구 인접시장을 공략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가구업계 1위인 한샘의 경우 본업인 부엌시장을 평정한 이후 일반가구와 사무용 가구, 생활용품에 이어 욕실 리모델링 시장까지 진출했다. 최근에는 부동산업을 사업목록에 추가했다. 모두가 내수용이다. 중국시장 진출을 시도하고 있지만, 특판 시장의 기회 모색에 불과하고 글로벌 격전지인 가구박람회에서는 관전자에 머물고 있다.

박람회장에 내로라하는 한국 가구업체의 부스는 없었지만 한국 가구 종사자들은 흔하게 마주쳤다. 이들은 아시아의 가구 트렌드를 확인하고 ‘바이어(Buyer)’자격으로 위탁생산을 담당해줄 중국 가구사를 찾느라 분주했다. 중국의 대형 소파회사인 쿠카 관계자는 “많은 한국 가구관계자가 부스를 다녀갔고 이미 2건의 계약을 체결했다”고 귀띔했다. 쿠카가 납품한 소파제품은 한국의 브랜드로 변신한 뒤 국내최종 소비자에게 배송된다. 가구업계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에게 판매된 소파 중 90% 이상이 중국산일 정도다. 가구산업이 ‘메이드인 차이나’에 포위 당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 외주화 전략을 등에 업은 국내 가구 업계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 소매판매액은 5조33억원으로 지난 2006년 이후 9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하지만 미래 성장을 위한 시도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게 전 세계 가구 업계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박람회 현장에서 만난 프랑스 가구사 관계자는 “오랜 기간 밀라노, 상하이 박람회를 찾았지만 한국 가구사를 경쟁자로 생각해본 적은 없다”며 “한국 가구사는 셀러(Seller)가 아닌 바이어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유럽 가구사 관계자 역시 “중국이나 한국 등 아시아 주요국 가구사들은 여전히 카피캣(제품 모방) 전략에 몰두하고 있다”며 “이 같은 전략으로는 해외시장에서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하이=박해욱기자 spooky@sedaily.com

박해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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