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이영선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노동·교육문제 못풀면 4차 산업혁명 길 안열려"

[서경이 만난 사람]

경제·사회 시스템 유연성 떨어져 빠른 변화에 효율적 대응 못해

정부R&D 성공률 90% 안될 말...실수 용인할 수 있어야 신산업 생겨

기업투자로 국가 경쟁력 높이는데 법인세 인상은 논할 단계 아냐

이영선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8일 오전 서울 광화문 본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송은석기자이영선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8일 오전 서울 광화문 본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송은석기자


올해 초 스위스의 금융그룹인 UBS가 평가한 우리나라의 4차 산업혁명 준비 성적은 25위였다. 스위스가 1위였고 미국이 5위, 일본이 12위에 이름을 올렸다. 중국은 우리보다 세 계단 아래인 28위였다. 25위라는 성적도 성적이지만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된 부문이 있다. 바로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다.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유연성은 조사 대상인 139개국 중 83위로 중국(37위)이나 러시아(50위)보다도 낮았다.

지난 8일 서울 광화문 국민경제자문회의지원단 회의실에서 만난 이영선(사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우리나라 기업이 아주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어도 실패하는 이유를 잘 들여다보라”며 “우리나라 경제·사회 시스템의 유연성은 4차 산업혁명의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에 많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기술력만큼이나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토양이 중요한데 과거의 틀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의장이 특히 강조한 분야는 노동과 교육이었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존 직업이 소멸하고 새로운 직업이 탄생하면서 노동시장의 충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여기에 맞는 유연한 노동시장이 필요하다”며 “교육도 창의적 인재를 낳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혁신해야 4차 산업혁명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고 강조했다.

/대담=이연선 경제부 차장 bluedash@sedaily.com

-세계 경제가 어수선하다. 최근 글로벌 정치·경제 상황을 어떻게 보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계속 세계 경제 침체기가 이어지고 있다. 1930년대 대공황과 견줘보면 당시에는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 10년이 걸렸다. 대공황 때는 경제학 지식이 아주 얕았다. 이후 케인스가 등장해 많은 문제를 해결했고 경제학 지식도 많이 발전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무엇이 문제일까. 금융위기는 세계 경제의 흐름이 신자유주의를 토대로 과격하게 흘러가면서 발생했다. 문제는 신자유주의가 팽배하면서 탐욕을 제어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유시장경제, 자본주의체제가 아닌 다른 제도를 만들기는 어렵다는 컨센서스는 형성돼 있다. 다만 경제가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제도를 만드는 게 아직 부진하다. 제도적 확실성이 없다 보니 세계 경제도 앞날이 불확실하다. 그래서 미국 대선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보호무역주의 같은 내부지향적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다.

-국내로 눈길을 돌리면 어떤가. 가장 큰 걸림돌이 뭘까.

△우리는 여태까지 고도성장에 익숙해 있다. 그래서 현 상황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은 게 사실이다. 사실 국제적으로 보면 나쁜 상황은 아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성장률이 1.7~1.8%였다. 우리는 3%에 육박한다. 과거보다 어렵다는 것이지 크게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니다. 좀 더 긍정적으로 우리 경제를 볼 필요가 있다. 투자를 많이 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소비도 활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자신감을 갖는 게 좋다. 물론 장기적으로 우리 문제를 파악하고 대비하려는 자세는 필요하다.

-장기적 문제라면 고령화인데. 대책은 계속 나오는데 왜 효과가 없나.

△고령화 속도가 빠른데 사회는 아직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고령화는 우리 잠재성장률을 크게 낮춘다. 오는 2030년이면 잠재성장률이 2% 밑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 부분을 해결하려고 노력은 해왔지만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난잡하게 퍼져 있는 미세한 정책들로 접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큰 틀에서 정책 방향을 분명히 제시해 확실한 부분에 확실하게 지원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면 맞벌이 부부에게 인센티브를 줘야 결혼을 장려할 수 있다. 여성들이 애 키우면서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출산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 국무총리실에서 이 문제를 관장하지만 그립을 더 강하게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규제도 그렇다. 정부는 푼다고 푸는데 기업은 체감을 못한다.

△규제는 필요한 규제가 있고 그렇지 않은 규제가 있다. 시간이 흘러 불필요해진 규제도 있다. 그걸 계속 검토하고 정리하는 시스템이 돼야 하는데 기대만큼 움직여주지 않고 있다.

국민경제자문회의가 제시한 규제 프리존도 그렇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심지어 지역구 의원들도 자신들 지역에 만드는 게 좋겠다고 하지만 국회에서는 정리를 못한다. 서비스산업도 마찬가지다. 여야를 막론하고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부분은 서비스산업이라는 걸 다 안다. 하지만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통과시켜주지 않는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 경제 문제를 푸는 분야는 합심해야 한다. 야당도 정권을 잡으려면 그런 부분에서 적극적으로 의사 표시를 해야 국민들이 따라온다.

-4차 산업혁명도 걱정에 비해 준비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나라 기업도 그렇고 정부도 그렇고 4차 산업혁명 전에 대기업 위주의 대량생산을 통해 수출하는 방식으로 경제성장을 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업이나 연구개발(R&D) 분야에 비교우위가 없다. R&D 정책이 잘되고 있는지 보라. 우리나라 R&D 성공률이 90%인데 이건 말이 안 된다. 우리나라가 실수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라는 걸 보여준다. 실수를 용인하는 제도를 만들어내야 새로운 산업과 기업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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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풀어야 할 게 뭐라고 생각하나.

△경제에 유연성이 있어야 새로운 산업의 성장이 이뤄진다. 하지만 사회적 기득권이 문제다. 대표적인 예가 노동시장의 경직성이다. 노동시장 규제가 보통 많은 게 아니다. 새 노동인구가 들어와 일자리를 찾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

재벌체제도 일종의 기득권이다. 중소기업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지 관료화돼 있는 대기업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구글·페이스북·아마존 등이 그랬다. 새로운 시장을 자꾸 열어줘야 하고 경쟁을 확대해야 한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 대기업이 돼야 한다. 그런 부분들을 확장하면 그게 바로 4차 산업혁명으로 가는 길이다. 그런 면에서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혁신센터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윈윈할 수 있도록 하는 좋은 모델이다.

-교육도 문제인데.

△교육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키워드를 얘기하고 싶다. 하나는 다양성이고 다른 하나는 유연성이다. 우선 우리나라 대학이 기업에서 써먹을 인재를 키우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다. 일면 맞지만 일면 틀리다. 대학은 기업에서 일할 사람만 기르는 곳이 아니다. 다양한 인재를 키운다. 그래서 대학도 다양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학에 등수를 매겨서 줄 세우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너무 일률적으로 정부의 패턴에 딱 맞춰 대학들을 끌고 가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대학도 바뀌어야 한다. 서울대가 최근 학부 정원을 줄이고 대학원 정원을 늘렸다. 그게 맞다. 세계적인 대학 교육의 추세는 ‘무크(MOOCs·무료 온라인 강의)’ 강좌에서 알 수 있다. 옛날에는 교수가 많은 학생을 놓고 ‘티칭’했는데 이제 교수가 할 일은 학생과 토론하는 ‘코칭’이다. 그렇게 하려면 학생 숫자가 적어야 한다. 그래야 쓸모 있는 인재가 나온다.

-최근 법인세 등 증세 이슈가 불거지고 있다.

△지금 우리 경제가 증세를 논할 시점이 아니다. 세금을 늘리면 경기가 더 어려워진다. 장기적 관점에서 증세를 얘기한다면 맞겠지만 그것도 우리가 미래의 복지 시스템을 어떻게 가져갈지, 인구구조나 경제 방향은 어떨지 등등을 논의하는 게 먼저다.

법인세 인상은 더더욱 문제다. 법인세는 우리 경제의 효율성에 영향을 주는 세목이다. 각국이 기업의 투자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트렌드로 가고 있는데 거기에 역행한다. 법인세가 부자에 대한 세금이라고들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법인세를 올려 소득분배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포퓰리즘적인 캐치프레이즈다.

-남북관계는 살얼음판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언급한 적이 있다. 그건 대전제다. 지금 시점에선 북한의 핵 문제 때문에 안보가 우선된다. 핵 문제에 대한 해결의 단초를 갖지 않고는 남북교류를 확대한다는 얘기를 하기 어렵다. 국제적 협력을 통해 북한에 대한 메시지를 분명히 하고 북핵에 대한 제재가 성공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보다 장기적으로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통일이 될 텐데 그 통일은 자유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 평화통일이 돼야 한다. 영유아 백신, 감염병 예방사업 등 인도적 협력도 지속해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남은 임기에 꼭 해야 할 일은.

△마지막 1년이 중요하다. 우리 경제가 새로운 도약을 이룰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놓는 해가 돼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노동·공공·금융·교육 등 4대 구조개혁을 완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모든 이슈가 청와대에만 집중되고 있다. 그렇게 해서 그 많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나. 정부부처들은 자기 부처만 보지 말고 우리 경제 전체를 봐야 한다. 각 부처 장관들이 대통령이라는 생각으로 일해야 한다.

/정리=김상훈기자ksh25th@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약력 △1947년 서울 △1966년 대광고 △1970년 서울대 경제학과 △1974년 미국 메릴랜드대 경제학 석사 △1976년 미국 메릴랜드대 경제학 박사 △1970년 한국은행 입행 △1978년 한국국제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1981년 연세대 조교수 △2002년 연세대 국제대학원장 △2007년 한국경제학회장 △2008년 제7대 한림대 총장 △2013년 대학구조개혁위원회 위원장 △2015년 대한적십자사 부총재△2012년~ 연세대 명예교수 △2013년~ 제5대 코피온 총재 △2015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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