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죽 끓이고 과일 깎는 공무원?...김영란법이 바꾼 풍경

김영란법 목전에 두고 열린 고위당정청협의...9,000원짜리 '죽세트' 등장

호텔 케이터링으로는 3만원 못 맞춰...총리실 직원이 배달해 데워서 대접

21일 국무총리 주재 고위 당정청협의에 등장한 9,000원짜리 ‘김영란 세트’/연합뉴스21일 국무총리 주재 고위 당정청협의에 등장한 9,000원짜리 ‘김영란 세트’/연합뉴스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법(김영란법)시행을 일주일 앞두고 열린 국무총리 주재 고위 당정청협의에서 9,000원 짜리 메뉴가 등장했다. 김영란 법 시행 전이지만 국민 여론을 고려해 총리실이 ‘예행연습’ 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이전까지 호텔의 값비싼 케이터링 서비스에 맡겼던 식사 대접을 9,000원에 맞추려다 보니 총리실 공무원이 죽을 배달해 끓이고 과일을 깎아 대접하는 서투른 촌극을 연출했다. 김영란법에서는 3만원까지 허용하지만 실질적인 정부 공식 행사의 식대 상한선은 1만 원 이하로 정해지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른바 ‘김영란 메뉴’가 등장한 것은 21일 오전 7시 30분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

회의에는 당에서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 김광림 정책위의장, 김도읍 원내수석 부대표가, 정부에서는 황교안 국무총리와 유일호경제부총리, 이준식 사회부총리, 이석준 국무조정실장이, 청와대에서 이원종 비서실장과 김재원 정무수석,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강석훈 경제수석이 참석하는 등 여권의 핵심인사들이 총출동했다.


조찬은 회의를 주재하는 총리실에서 준비했는데 김영란 법을 앞두고 국민 정서를 따져 솔선 수범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으로 메뉴를 바꾸기로 결정했고, 총리도 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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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찬을 겸해 열린 이날 회의는 국정 활동의 하나로 열린 공식행사여서 김영란 법도 3만 원 식사까지는 허용하지만 그마저도 여론의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총리실의 판단이었다. 고민에 빠진 것은 실제 업무를 담당하는 의전팀 직원들. 그전까지는 호텔에서 음식을 배달해서 상을 차리고 서빙을 맡았기 때문에 공무원이 직접 관여할 일은 없었다. 그러나 3만 원도 호텔 케이터링 서비스를 감당하기 버거웠는데 9,000원은 더욱 어림없었다. 고민 끝에 총리실 직원들은 직접 음식을 준비하기로 하고, 가장 손이 덜 가는 메뉴인 죽을 선택했다. 9,000원에 죽을 배달해주는 곳은 없었기 때문에 총리실 직원들은 이날 새벽 들통에 죽을 담아 나르고 한 켠 에서 데우다가 그릇에 담아 냈다. 콩자반과 물김치 등을 곁들이고 과일도 사서 깎아 한 켠 에 놓았다.

총리실 관계자는 “솔선수범한다는 차원에서 시도한 일이지만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서툴렀다”면서 “앞으로 외빈을 모시는 중요한 행사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정부의 공식 행사라면 3만 원 이하까지는 된다지만 어디까지가 공식 행사인지, 3만 원도 비싸다고 보는 여론은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다.

공무를 수행하기 위해 입문한 공직자가 본업이 아닌 죽 배달과 과일깎기를 하기 위해 새벽부터 출근하는 게 과연 맞는 것이냐는 지적도 흘러나온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김영란법의 본래 취지는 오랜 관계 속에서 재력과 권력을 주고 받는 ‘스폰서 검사’와 같은 폐해를 잡겠다는 것인데 엉뚱하게3·5·10규정에 매몰 되어 정작 잡아야 하는 폐단은 놓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라고 토로했다.

/임세원기자 why@sedaily.com

=세종=임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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