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지진대책법 8년 방치한 정부]전문가 없는 복지부에 "내진기준 만들라"...탁상행정에 재난대응 구멍

복지부는 무시하다 이달 착수

공통기준 만들고 부처특성 추가

건축법등 관련 법안도 손봐야

"지진없는 한반도" 안일한 대처

연구예산·인력도 턱없이 부족



지난 2008년 3월 옛 행정안전부는 지진재해대책법(현 지진·화산재해대책법)을 새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의료법에 따른 종합병원과 병원·요양병원을 비롯해 학교·철도·항만·전기통신시설 등은 각 부처 장관이 내진 설계 기준을 설정하고 이행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의료기관을 담당하는 보건복지부는 8년이 지난 올해 9월 내진 설계 기준 제정작업을 시작했다. 옛 행안부에서 안전 업무를 넘겨받은 국민안전처에서 “빨리 부처 기준을 만들라”고 재촉한 결과라는 후문이다.


복지부의 논리는 이렇다. 건축법에 지난 1988년부터 내진 설계가 의무화된데다 주요 병원은 건축법에 따라 건물을 지었다. 게다가 병원의 내진 설계 기준을 따로 만든다고 해도 응급실과 병상 규모, 내진 필요성에 따라 ‘특1’ ‘특2’처럼 구분해 내진 설계 강도를 달리하는 게 맞다고 봤다. 특히 복지부에는 건설이나 지진 관련 전문가도 없다. 안전처 기준이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복지부의 관계자는 “건축법은 종합병원이나 1,000㎡ 이상인 병원을 내진 설계를 하도록 돼 있다”며 “부처별로 내진 설계 기준을 별도로 만들라고 해서 만들기는 하는데 건축법 내용에 일부 운영기준을 추가하는 정도가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지진대책법을 만든 부처는 각 부처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법을 만들었고 해당 부처는 실정에 안 맞는다며 지진대책법을 위반해온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 꼴이다.


이 때문에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지진·화산대책법을 포함해 건축법 등 관련 법안을 총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소한의 공통기준을 만들고 부처별로 기준을 추가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얘기다. 정부 고위 관계자도 “개별 부처마다 내진 설계 기준이 천차만별이면 어떻게 하겠느냐”며 “안전처가 공통 기준을 마련해주든지 관련 법안을 전면적으로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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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헛다리 짚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경주 지진 이후 지진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되고 있지만 국내 지진 연구 환경은 더없이 열악하다. ‘지진 비상’에 따른 국민들의 공포감을 정부의 지질연구정책이 자초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지진의 발생 위치와 시점·규모를 예측하고 원인을 분석하는 기초과학인 활성단층 연구는 인력·예산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활성단층 연구를 이끌어갈 박사급 연구 인력은 전국을 통틀어 20명이 채 되지 않는다. 경재복 한국교원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지진 안전지대’라는 인식 탓에 연구자들의 관심이 적었고 지질 분야 전공을 하겠다는 학생들도 적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일선 현장에서는 “연구를 하고 싶어도 사람이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정부 지원도 부실하다. 안전처의 내년도 지진 관련 예산은 56억원인데 이중 지진·화산 대응 시스템 구축과 지진방재 교육훈련에 들어가는 예산 30억원을 비롯해 기타 제반 비용을 빼고 나면 단층 조사에 투입되는 돈은 15억7,500만원이다. 학계 관계자는 “단층 조사 예산이 올해는 없다가 내년에 생긴 것이 그나마 다행인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국토 전체의 활성단층 현황을 파악하는 국가 차원의 연구는 내년부터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이미 세계적으로 활성단층 연구가 본격화한 점을 고려하면 너무 늦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필·조양준기자 susopa@sedaily.com

김영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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