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19세기판 디지털 컨버전스, 철도 전신 융합





철도회사 직원 중에 가장 많은 직업군은? 기관사나 역무원이겠지만 철도의 개척시대인 19세기 중반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기관사보다 말 타는 사람이 많았다. 단선철도에서 충돌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미국에서는 증기기관차 20㎞ 앞까지 깃발을 든 기마수들을 촘촘히 포진시켰다. 선두의 기마수가 보내는 안전신호를 릴레이로 전달받아야 기차는 마음 놓고 달렸다. 속도가 늦을 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요금도 비쌌다. 인건비와 마초의 비용까지 철도 운임에 포함됐으니까. 얼마 안 지나 대안이 나왔다. 약속된 운행 시간표에 따라 역에 도착한 뒤, 맞은 편 열차가 역내 복선 구가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스템. 안전하고 인건비를 다소 줄여줬으나 열차 운행 시간이 늘어지기 일쑤였다. 맞은 편 열차가 정시에 도착하지 않으면 1시간까지 기다렸다.

대기 시간이 1시간을 넘으면 기관사 조수가 각 역에 준비된 말을 타고 선로를 따라 나갔다. 빨간 깃발이나 등불을 든 기관사 조수가 출발한 뒤 20분 지나서야 기차를 움직일 수 있었다. 도중에 기관사 조수가 위험 신호를 보내면 열차가 멈춰 뒤로도 사람을 내보냈다. 추돌 사고를 피하기 위해서다. 초기 철도에서 시간을 맞추기란 기적에 가까웠다.

변혁은 1851년9월22일 뉴욕-이리 간 철도에서 일어났다. 이리철도회사의 총감독관 찰스 마이넛(Charles Minot·당시 41세)은 급행열차를 타고 서쪽으로 가던 중 튜너역에서 대기에 걸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동부행 열차가 나타나지 않던 상황. 답답해하던 마이넛의 시야에 전신줄이 들어온 순간, 아이디어가 스쳤다. ‘전보가 있지!’ 마이넛은 다음 역에 동부행 열차의 통과 여부를 묻는 전보를 쳤다. ‘아직 통과하지 않았다’라는 답신이 왔을 때 마이넛은 명령을 담은 전보를 보냈다.


‘동부행 열차가 도착하면 별도 지시가 있을 때까지 역에 잡아두라’는 전보를 치고 열차를 출발시키려는 순간, 기관사가 버텼다. ‘동부행 열차가 눈 앞에 들어오기 전까지 절대로 열차를 출발시키지 않겠다’고. 설득과 강압에도 기관사가 ‘충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버티자 마이넛은 스스로 운행을 맡아 열차를 출발시켰다. 기관사는 열차가 동부행 열차와 정면 충돌할 것이라며 객차의 맨 뒷쪽으로 꽁무니를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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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넛이 무사히 다음 역에 도착했을 때도 동부행 열차는 나타나지 않았다. 똑같은 전신교환이 되풀이되고 열차는 그 때마다 지체 없이 움직였다. 기관사가 새파랗게 질린 가운데 마이넛이 직접 운행을 맡은 서부행 열차는 네 번째 역에서야 동부행 열차를 만났다. 마이넛은 최대 4시간을 단축했다는 기쁨보다 훨씬 더 큰 희열에 빠졌다. 철도 교통망을 전신으로 관제하는 시대를 자신의 손으로 개막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왜 다른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미국에 전신 시설이 처음 설치된 시기가 1844년. 미국 연방정부는 전신의 가능성을 시험하기 위해 볼티모어-오하이오 61㎞ 구간에 예산 3만 달러를 들여 전신망을 깔았다. 찰스 마이넛이 모스 부호를 관제에 사용할 즈음에는 전신망이 3만㎞ 넘게 보급됐으나 전신과 철도 운행을 연결하려는 생각은 누구도 떠올리지 못했다.

평소 아래 직원들과 격의 없이 지냈던 찰스 마이넛 자신도 전신의 유용성을 몰랐다. 뉴욕-이리 철도 노선을 따라 전신망이 설치된 게 1847년. 감독관으로 일하던 마이넛도 총감독관으로 승진하고 난 뒤에 연착 현장을 직접 경험하고서야 혁신책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마이넛의 사례는 경영인들에게도 교훈을 준다. ‘기업의 혁신은 책임 의식과 현장 중심의 사고에서 나온다’는.

찰스 마이넛이 찾아낸 19세기 판 디지털 융복합(融復合·convergence)은 세상을 바꿨다. 유연한 사고력이 가져온 융복합이 가져온 경제적·사회적 진보는 사고방식까지 트이게 만들었다. 철도 회사들은 여러 전신회사에 철도를 따라 전신을 가설할 수 있는 권리를 무상으로 허용했다. 전신회사는 그 보상으로 철도 교통 제어에 전신의 최우선 사용권을 무상으로 넘겼다.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승리한 원동력을 철도를 따라 부설된 전신의 효과적 이용 덕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철도와 전신은 지금도 한 몸처럼 공동 발전하고 있다.

철도와 통신의 융합의 결과는 선순환 그 자체다. 연착이 대폭 줄어 신뢰도가 높아지며 철도 물동량이 뛰고 여객 수요도 많아졌다. 운임도 내려가면서도 기업의 수익성도 좋아졌다. 기마수와 기관사 조수는 직장을 잃었으나 대부분 새로운 직업을 찾았다. 당시 미국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였던 덕분이다. 이종간 결합은 오늘날에도 시대의 화두다. 융합에 미래가 있다. 앞으로도 인간의 직업과 생존권을 유지, 보장할 수 있는 혁신이 일어나면 좋겠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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