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천웅 이스트스프링운용 대표 "적어도 5년은 지켜보며 좋은 기업 발굴…장기투자에 최적화된 조직 꾸렸죠"

■ CEO&Story

취임 후 4년간 수탁액 3조 늘고 수익률 끌어올려

연내 아시아 채권 펀드 출시…인도 주식도 관심

한국형 헤지펀드, 서두르지 않을 것" 신중모드

"펀드도 때론 하락세…길게보는 투자 풍토 필요"



박천웅(54·사진)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 대표이사와의 인터뷰 내내 그의 고집스러운 투자철학이 읽혔다. ‘좋은 기업’과 ‘성장’으로 요약되는 그의 투자철학은 첫 임기 동안 높은 성과로 나타났다. 지난 22일 기준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의 수탁액은 13조125억원. 국내 업체와 합작사를 제외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가운데 가장 많다. 2012년 10월 박 대표가 취임한 후 3조원 이상 늘었다. 수탁액 증가는 수익률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의 대표 주식형 펀드인 ‘코리아리더스펀드’의 지난 3년간 수익률은 16.59%, 5년간은 29.96%를 기록했다. 박 대표는 “아직 학점으로 보면 B+ 수준”이라며 “좋은 기업, 성장성이 있는 기업과 시장을 발굴해 투자하는 원칙을 앞으로도 지켜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가 최근 가장 주목하는 시장은 아시아 채권 시장이다.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은 올해 내 아시아 국채 및 회사채에 투자하는 펀드를 출시할 계획이다. 투자 대상은 홍콩·한국·대만·싱가포르 등 비교적 선진 시장에 가까운 국가뿐 아니라 중국·인도·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신흥 시장까지 다양하다. 박 대표는 “중국·인도 채권 시장은 성장 잠재력이 크기 때문에 아시아 회사채의 투자 매력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은 중국 경제가 몇 년간 경착륙 우려를 딛고 하방 경직성이 생겼고 인도 역시 경제가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신흥국 주식 시장에서는 인도를 유심히 보고 있다.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은 2007년 출시됐던 인도주식형펀드의 투자전략을 재정비해 올 2월 ‘인디아리더스’ 펀드로 다시 내놓았다. 박 대표는 “인도는 정보기술(IT) 중심의 4차 산업혁명을 기득권의 반발 없이 추진하기 쉽고 인프라 투자도 활발하다”며 “정치만 안정된다면 성장 잠재력을 터뜨릴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인도의 변화에 좀 더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 아예 운용을 현지화했다. 인도의 2대 자산운용사인 ICICI 프루덴셜자산운용의 투자자문을 활용한다.

시장에서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이 가장 먼저 진출할 것으로 기대했던 한국형 헤지펀드에 대해서는 조심스럽다. 그는 “한정된 헤지펀드 시장도 경쟁이 격해지면 수익률을 갉아먹고 시장 자체를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스트스프링운용은 헤지펀드의 주요 전략인 롱쇼트를 활용한 절대수익추구형스와프(ARS·Absolute Return Swap)를 1,800억원 규모로 운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헤지펀드 진출이 유력한 운용사 중 하나로 꼽혀왔으나 서둘지 않는다는 계획이다. 박 대표는 “저금리 상황에서는 헤지펀드에 기대하는 수익률이 달라져야 하고 운용 기법도 더 정교해져야 한다”며 “수익률을 어떻게든 조율해낼 수 있는 역량이 헤지펀드 시장에서 승리자를 좌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천웅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 대표 인터뷰/권욱기자박천웅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 대표 인터뷰/권욱기자


인터뷰를 진행하며 박 대표에게 최근 국내 주식형펀드의 자금 유출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순간 박 대표의 목소리와 얼굴이 무거워졌다. 그는 “자산운용사가 할 말이 없어지는 부분”이라며 “다른 국가에 비해 펀드 운용 역량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펀드를 이용해서 얼마나 많은 수익률이 나왔는지 비교한다면 고객에게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자산운용사들이 신뢰를 회복하려면 단기적인 성과보다 확실한 투자철학을 갖고 기업의 펀더멘털에 근거한 장기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투자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각종 시행착오를 거쳐 스타일 투자가 자리 잡았던 만큼 한국도 현재는 스타일 투자가 정착하는 단계라는 게 박 대표의 분석이다. 그는 “자산운용사 모두 성과가 좋았다, 안 좋았다를 반복하지만 스타일별로 좋은 운용팀이 있고 이에 따른 일관된 투자를 하는 운용사를 골라 평균하면 시장보다 괜찮은 성과를 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펀드도 일종의 모멘텀 투자로 시장의 흐름에 따라 하락세에 노출되는 일은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모두가 운용역의 잘못으로만 도식화할 수는 없다. 국내 증시가 최근 5년여 동안 이른바 ‘박스권’에서 움직이는 동안 국내 주식형펀드의 설정액은 박스권 하단에서 증가했다가 상단에서 줄어드는 패턴을 반복했다. 이 간격은 날로 좁아지는 추세다. 박 대표는 “투자자들도 좀 더 길게 보고 투자하는 풍토가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적정 투자기간의 마지노선은 3년이다. ‘주가는 실물의 그림자’라는 측면에서 주가와 기업의 펀더멘털 상관관계가 증명되려면 적어도 3년은 걸린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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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표가 이끄는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 역시 지난 4년 남짓한 기간 장기 투자에 최적화된 조직으로 만들어졌다. 뚝심 있게 적어도 5년은 지켜보며 ‘좋은 기업’을 골라내는 능력이 있는 운용역으로만 채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이른바 ‘스윙트레이딩(기술적 매매)’에 대해 “1년 정도만 내다보고 투자하려면 정치·사회적 뉴스와 계절적 요인에도 민감해야 하는데 그건 ‘찍기’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며 “단기적 트레이딩에서 수익을 얻는 기법도 존중한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7월부터 박 대표는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의 운영위원회 민간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운용 업계에 종사했던 만큼 꼭 해야 할 ‘의무’라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금융투자 업계에서 이렇게 오랜 기간 일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로 이미 많은 혜택을 입었다고 생각한다”며 “민간 분야에서 일하며 공적 영역에서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사진=권욱기자 ukkwon@sedaily.com

●박천웅 대표는

△1962년 충남 서산 △1987년 연세대 경제학 석사 △1988년 현대증권 애널리스트 △1996년 뉴욕 드래곤코리아펀드 운용역 △1998년 미국 노트르담대 MBA △2000년 메릴린치인베스트먼트매니저(영국·싱가포르) 자산운용 매니저 △2003년 모간스탠리 한국지점 리서치헤드 상무 △2005년 우리투자증권 리서치 및 해외사업부 대표 전무 △2010년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법인 CEO △2012년(~현재)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 대표이사 △2016년(~현재) 한국투자공사(KIC) 운영위원회 민간위원

박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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