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김영란법 D-1...인사동 한정식 거리 가보니]"손님 끊긴 한정식집 절반 매물..권리금 반토막에도 거래절벽"

이 정도로 장사 안될줄은 몰라

28일 이후 저녁 예약 거의 없어

60년된 '유정' 쌀국수집 전환 등

2곳중 1곳은 업종 바꿀지 고민

값 맞추려면 수입산 써야하는데

단골손님 떨어질까봐 전전긍긍

일부 인건비 줄이려 절반 감원도

본격 시행땐 줄폐업 사태 불보듯

김영란법 시행을 이틀 앞둔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 한정식 거리에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겨 있다.  /이지윤기자김영란법 시행을 이틀 앞둔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 한정식 거리에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겨 있다. /이지윤기자


“김영란법이요? 말도 마세요. 장사를 안 할 수는 없어 일단 문은 열었는데 이 정도로 손님이 끊긴 건 20년 만에 처음입니다.”(A 한정식 대표)


“딱 절반이라고 보면 돼요. 업종 전환을 고민하는 한정식집이요. 근데 갈수록 권리금이 내려가고는 있어도 거래는 없어요.”(B 공인중개사 대표)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거리. 외국인 관광객으로 북적대는 골동품 가게 사이를 지나 한정식집이 밀집한 뒷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이내 적막함이 가득했다. 대부분 가게에는 뒤늦게 점심식사를 하는 가족 단위 손님만 몇몇 눈에 띌 뿐 종업원들은 식당 한쪽에 모여 무료함을 달래고 있었다. 인근 한정식집 목향원에서 만난 손님 최모씨는 “가족들과 종종 찾는 단골집인데 손님이 없어 깜짝 놀랐다”며 “언론에서 김영란법으로 한정식집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줄은 몰랐다”고 전했다.

28일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한정식 메카’로 불려온 인사동 한정식이 사실상 개점휴업에 내몰렸다. 공무원과 언론인 등을 대상으로 3만원 이상의 접대성 식사를 금지한다는 소식에 일찌감치 손님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일부 가게는 3만원대 이하로 가격을 구성한 일명 ‘김영란 세트’까지 부랴부랴 선보였지만 대부분 주력 메뉴가 5만원이 넘어 김영란법이 본격 발효되면 폐업 사태가 속출할 것이라는 게 공통된 목소리다.

인사동 인근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하는 김모 대표는 “인사동·청운동·수송동을 통틀어 한정식집이 100여곳 정도 되는데 이미 50곳이 업종 전환을 고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매물로 나온 가게도 지난달 30여개 수준에서 이달 들어 40개를 넘어섰다”고 귀띔했다.


이튿날인 26일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인사동 한정식 골목 초입에 위치한 수정의 한 직원은 “저녁 예약을 보통 1개월 전부터 받는데 28일을 기점으로 아예 예약이 전무한 실정”이라며 “급한 대로 3만원 이하 세트를 준비하기는 했지만 이대로라면 인건비나 건질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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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인사동 한정식집의 수난은 올여름부터 이미 시작됐다. 14년 동안 인사동에 터전을 잡았던 한정식집 해인이 6월 말 영업을 중단했고 7월에는 60년 전통의 유정이 문을 닫고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으로 간판을 바꿔 달기 위한 공사에 돌입했다.

아직 업종 전환이나 폐점을 결정하지 못한 가게들도 고민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즐겨 찾았던 한정식집으로 유명한 두레의 이숙희 대표는 “우리 가게는 저녁식사 중 가장 저렴한 메뉴가 7만원대인데 3만원 이하로 맞추라는 것은 점심시간에만 장사하고 수입산으로 식재료를 맞추라는 의미”라고 하소연했다. 메뉴를 변경하자니 매출 하락이 불가피하고 그렇다고 단골이 대부분인 예약손님을 안 받을 수도 없는 이중고에 내몰리고 있다는 얘기다.

매물로 나온 한정식집 역시 매수자가 없는 ‘거래 절벽’에 빠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170㎡(약 50평) 규모의 한정식집 기준으로 권리금이 3억원에 육박했지만 올 들어서는 반토막났다. 인사동에서 30년째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한 박모 대표는 “유정 같은 한정식집은 주인이 건물주여서 쉽게 업종 변경할 수 있지만 기존 가게는 월세조차 부담하기 버겁다”며 “김영란법으로 인사동 한정식집이 다 없어질 위기라는 소문이 돌면서 지금은 수요 자체가 없다”고 절망했다.

이 때문에 업종 전환이나 폐업을 결정하지 못한 나머지 한정식집은 이도저도 못한 채 고육지책으로 종업원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당장 매출이 늘어날 여지가 없으니 인건비라도 줄여 수지를 맞춰보겠다는 것이다. 인사동의 대형 한정식집 중 하나로 꼽히던 C 한정식집은 40명에 달했던 종업원을 20명으로 줄였고 또 다른 한정식집 교감은 최근 종업원을 모두 내보내고 이달부터 가족들이 매장으로 출근하고 있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김영란법 시행으로 국내 외식업 전체 매출의 약 5%인 4조1,500억원이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한정식이 61.3%의 영향을 받아 양식(60.3%)이나 고깃집(54.5%)에 비해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직격탄을 고스란히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상헌 한국외식업중앙회 이사는 “세종시 이전 여파에 이어 김영란법까지 시행되면서 인사동 한정식 거리가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고 있다”며 “일부 가게가 3만원 미만 메뉴를 선보이거나 종업원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해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무더기 폐업 사태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걱정했다.

/이지성·이지윤기자 engine@sedaily.com

이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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