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포럼] 투자은행은 투자은행답게 키워야

강경훈 동국대학교 경영대학 부교수



자본시장의 꽃으로 불리는 투자은행(IB) 육성은 우리 정부의 오랜 숙원사업이다. 경제 성장동력을 강화하려면 성장잠재력이 높은 혁신형 기업에 적극적으로 모험자본을 공급해야 하는데 대출영업 중심의 은행은 역부족이다. 아울러 최근 우리 경제의 최대 현안인 기업 구조조정도 IB의 전공영역이다.

우리 경제에 IB가 꼭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정부는 그동안 다양한 육성방안을 제시해왔다. 지난 2007년 자본시장법을 제정했다. 이후 당초 기대와 달리 금융투자회사들이 난립하는 양상을 보이자 2013년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를 도입해 자기자본이 3조원 이상인 경우 기업신용 공여 업무를 허용했다. 그래도 효과가 신통치 않자 최근에는 새로운 자금조달 수단, 기업신용 공여 한도, 외국환 업무 확대 등의 당근을 통해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대형화를 유도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일련의 IB 육성방안을 보면서 정부의 고심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다. 워낙 쉽지 않은 과제이기 때문이다. 잘 발달한 IB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세계에 몇이나 되겠는가.


한편으로는 그동안 추진된 육성정책의 방향에 대해 점검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자본시장법이 만들어지면서 금융투자회사에 허용된 지급결제 업무를 필두로 그동안 IB를 육성하기 위해 제시된 당근들은 주로 상업은행의 업무였다. 금융의 겸업주의가 좋은지 전업주의가 옳은지는 논외로 하고 상업은행의 업무를 당근으로 써 IB를 키우는 것이 좋은 방법일지가 의문이다. 이는 마치 육식동물을 키우면서 곡물을 먹이는 것과 비슷한데 곡물로 덩치를 키울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정작 육식동물의 본성은 흐려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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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유수의 IB들과 경쟁하기 위해 자본 규모를 늘려야 한다는 판단은 옳다. 그러나 자본 규모는 성공적인 IB를 위한 여러 가지 요소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덩치가 크다고 IB 본연의 기능을 잘 수행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IB 본연의 기능은 혁신기업을 잘 골라 모험자본을 제공하는 것, 대형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금과 금융 서비스를 공급하는 것, 구조조정이 필요한 기업과 퇴출돼야 할 기업을 선별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등이다.

이러한 업무들의 핵심에는 정보의 생산과 유통이 있다. 혁신기업, 대형 프로젝트 및 부실기업 등에 대해 여러 가지 정보를 생산해 투자자에게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어려운 과제다. 특히 정보의 생산과 매개 과정에 정부가 개입하지 않도록 자제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과거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 과정에서는 주요 기업의 인수합병(M&A)이나 구조조정 등에 정부가 간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야 IB가 자라날 수 있다. 물론 경제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기업 구조조정 등을 자본시장의 논리로만 결정하는 것은 무리다. 그렇다고 정부나 정치권의 논리대로만 끌고 가는 것도 좋지 않다. 다양한 정보가 만들어지고 여러 의견이 교환돼 옳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왜 IB를 키우는 것이 힘든지 짐작되는 대목이라 하겠다.

강경훈 동국대학교 경영대학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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