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30일 시행에 들어간 은행법 개정안에 이어 28일부터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까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시중은행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그동안 각 은행은 집합 강의는 물론 화상 회의까지 동원해 사전 준법 교육을 수차례 진행했지만 기존의 고객 유치 및 영업 관행을 사실상 모두 제한하는 낯선 환경에서 준법은 물론 새로운 영업 전략을 마련하느라 고심하고 있다.
27일 금융계에 따르면 A은행은 은행법 개정안에 따라 일선 지점에서 영업 활동 중 사용한 비용을 규정에 맞춰 입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영업 담당자가 영업 활동 과정에서 만난 고객의 이름과 생년월일, 식사 가액, 선물 가액 등을 전산 시스템에 입력하면 준법감시인에게 자동 전달되는 식이다. 개정된 은행법에 따라 은행 이용자에게 3만원 초과 금전이나 물품·식사를 제공하거나 20만원이 넘는 경조비·화환 등을 보낼 때 준법감시인에게 반드시 보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논란이 됐던 고객의 생년월일 입력 부분은 휴대폰 번호로 대체가 가능해졌다. 개인 신상정보를 은행에서 보유하고 있는 고객일 경우 은행 측에서 자체적으로 입력 가능하나 신규 고객에게는 개인 정보를 묻는 게 너무 부담스럽다는 일선의 하소연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선 영업 현장에서 느끼는 부담은 여전하다. A은행 관계자는 “지점장이나 PB가 VIP에게 선물 등을 제공할 때 얼마든지 기술적으로 고객이 눈치채지 못하게 개인정보를 입력할 수는 있다”며 “하지만 본인의 개인 신상정보는 물론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먹었는지에 관한 기록이 은행 전산에 고스란히 남는다는 점에 대해 기분이 좋을 고객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케팅 비용 관리 부분도 깐깐해졌다. 은행들은 모바일 등을 통해 소액 기프티콘을 추첨을 통해 고객에게 제공하는 이벤트 등을 진행할 때도 응모 고객의 정보를 모두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지방자치단체 등의 행사에 후원한 기록 역시 금액 규모에 따라 양식에 맞춰 보고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은행법 개정안에 따른 보고 규정과 김영란법이 동시에 적용되는 고객을 응대하게 될 때다. 공직자의 배우자 등 개인 신상정보만으로는 김영란법 적용 대상임을 은행 직원 입장에서는 확인할 길이 없는 고객에게 3만원이 넘는 식사나 5만원이 넘는 선물을 제공하게 되면 은행 직원과 고객이 모두 김영란법의 처벌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B은행 관계자는 “김영란법에 전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는 만큼 웬만한 고객은 본인이 적용 대상이라는 점을 알고 스스로 법을 지키려 할 것이라고 기대는 하지만 예외적인 경우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며 “아무도 정답을 모르는 상황이라 판례가 생기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대책이 없는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C은행의 한 영업 담당 임원은 “준법지원부서와 영업지원부서가 요즘처럼 교류가 많은 적이 없었다”며 “심지어 일선 지점에서 자체적인 마케팅 행사를 진행할 때도 일일이 준법지원부서로부터 사전 검토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은행연합회는 시중은행들이 은행법 개정안과 김영란법 시행으로 영업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은행권에서 발생 가능한 상황별 사례별 Q&A를 만들기로 했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회원사들로부터 질문을 받아 법무팀에서 검토하고 있으며 최종적으로 국민권익위의 자문을 거쳐 회원사들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