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친구, 이상과 현실사이

임석훈 논설위원

스폰서 검사·관료 사태처럼

우정 가장한 '부당거래' 만연

빈번한 惡의 연대 끊어내려면

지연·학연 집착 문화 벗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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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달 전 친구에 대한 흥미 있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사람의 일생에 만나는 친구 수는 25세까지는 늘어나지만 그 이후부터는 줄어든다는 것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핀란드 알토대 연구팀이 300만명의 휴대폰 사용자를 대상으로 알아본 결과다. 25세 남성은 한 달 평균 19명과 여성은 17.5명과 연락하고 지내는데 이를 정점으로 그 수가 감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39세가 되면 한 달 평균 접촉하는 수는 남성 12명, 여성은 15명으로 줄었다. 사람들에게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누가 중요하고 가치 있는지를 판단해 ‘투자’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게 연구팀이 내린 결론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친구 사귀기에도 알게 모르게 투자 개념을 적용한다는 얘기다. 친구 하면 으레 떠오르는 신뢰나 우정이라는 말과는 상당히 뉘앙스가 다른 분석이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절친’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갑자기 고민스러운 일이 생겼거나 힘든 일이 닥쳤을 때, 혹은 그냥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당장 편하게 만나서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고 나의 존재와 가치를 알아주고 지지해주는 사람…. 한마디로 친구는 공감의 대상이다. 자신의 고민이나 갈등을 함께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큰 힘이 된다. 이런 친구의 원형은 중국 고사에 자주 등장한다. 관중의 배신과 비열함을 감싸주며 그의 존재를 인정해준 포숙아(관포지교·管鮑之交)나 자신의 음악을 알아주는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거문고의 줄을 끊어버린 백아(백아절현·伯牙絶絃)의 우정 등.


이와는 반대로 원수지간이 된 친구 관계도 많다. 전국시대 위나라 때 동문수학한 절친 사이였지만 권력욕에 사로잡힌 질투와 시기심으로 파국을 맞은 손빈과 방연의 이야기가 그렇다. 현실에서는, 특히 세상살이가 각박해지면서 아름다운 친구의 미담보다는 ‘손빈과 방연’류의 잘못된 만남이 자주 눈에 띈다. 최근 세간의 관심을 끈 ‘친구 게이트’를 보노라면 친구 관계가 현실적인 필요에 따라 형성된다는 기능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친구를 통해 여러 정보를 공유하거나 교환하고 물질적인 도움을 주고받는데 이게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때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 쉽지 않다는 관점이다. 옥스퍼드대 조사에서 나타난 ‘투자론’과도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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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준 전 검사장과 김형준 부장검사,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의 추문을 들여다보면 우정으로 포장된 친구 관계의 허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다들 스폰서와 중·고교·대학 동문으로 얽힌 ‘절친’임을 과시했지만 결국에는 허울뿐이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50년 지기 고교동창이라더니 수천만원의 명절 떡값을 놓고 진술 공방을 벌이는 전직 고위관료와 중견기업 회장의 모습에서는 측은함마저 느껴진다. 잘 나가는 기업인과 검사 친구의 진실 게임 속에는 친구나 우정은 온데간데없고 ‘나는 살아야겠다’는 이기심만 가득하다. “검사 친구의 존재는 상인들이 믿고 거래를 하게끔 만드는 무기이기도 했다”는 스폰서 사업가의 말은 섬뜩하기도 하다. 어차피 이해타산으로 맺어진 친구들이었으니 그게 어긋나면 공멸할 수밖에 없는 관계였던 셈이다.

친구에 속고 친구에 우는 일이 빈번한 것은 우리가 너무 지연·학연에 얽매어 살기 때문일 것이다. 그 틈을 비집고 수용·신뢰·존중과는 거리가 먼 사이비 절친이 넘쳐나고 있다. ‘우리가 남인가’ 문화가 사그라들지 않는 한 친구 게이트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는 얘기다. 지난달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알렉스 펜틀런드 교수는 사람들이 느끼는 우정의 절반가량은 거짓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MBA 과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자신이 100% 친구라고 믿는 사람들 중 상대도 자신을 친구로 여기는 경우가 53%에 불과했다. 무탈하게 살려면 ‘친구 감별법’도 배워야 하는 시대다. /shim@sedaily.com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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