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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폭스바겐에 국제 손배소] "주주가치 훼손땐 국내외 막론 '월스트리트룰' 행사"

대우조선·옥시 이어 투자 손실 입힌 기업 철퇴

문형표·강면욱 체제 후 수익률 방어 두드러져

해외주식 비중 확대 따른 리스크 줄이기 분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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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독일 폭스바겐사(社)를 상대로 국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선 것은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투자기업에 대해서는 국내외를 막론하지 않고 책임을 묻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국민연금은 앞서 지난 7월 분식회계 사실을 제때 공시하지 않아 주식투자 손실을 입었다며 대우조선해양과 회계법인을 상대로 489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최근에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수백 명의 사망자를 낸 가해기업의 직접주식투자 비중을 줄였다. 국민연금의 이 같은 변화는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과 강면욱 기금운용본부장 체제가 들어선 후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개입 논란을 최소화하면서 문제를 일으킨 기업에는 벌을 주기 위해 소극적인 형태의 ‘월스트리트룰(Wallstreet Rule)’을 활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룰이란 뉴욕 월가에서 기관투자가들이 주식투자자로서 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관여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대신 해당 주식을 팔아치우는 방법으로 기업에 대한 평가를 대신하는 방식을 말한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세계 3위 규모의 연기금으로 성장했지만 그동안 기업 경영권 침해 논란을 의식해 적극적인 행동은 자제해왔다”며 “하지만 최근 국내외적으로 논란을 일으킨 기업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주식을 매도하는 것은 이전과 다른 모습”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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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맥락에서 보면 국민연금이 독일 폭스바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소송금액을 떠나 의미가 크다. 실제 이번 배출가스 조작으로 국민연금이 입은 피해는 노르웨이 국부펀드나 미국의 캘퍼스 등 다른 글로벌 연기금과 비교할 때 크지는 않다. 폭스바겐의 4대 주주로 알려진 노르웨이 국부펀드와 캘퍼스는 이번 스캔들에 따른 주가폭락으로 수천억원 규모의 투자 손실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외신보도에 따르면 최근까지 독일 브라운슈바이크 지방법원에 폭스바겐 소송과 관련해 접수된 기관투자가와 개인들의 투자 손실 규모는 무려 10조원에 달한다. 이에 비해 국민연금의 지난해 말 기준 폭스바겐 투자 평가액은 300억원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국민연금이 폭스바겐을 상대로 국제 소송전에 참여한 것은 해외 기업이라도 반사회적인 행위로 투자 손실을 입힌 기업은 투자의 금액 규모를 떠나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앞서 국민연금은 가습기 살균제 가해 해외 기업(옥시·테스코·코스트코)에 대해서도 사회적 책임투자 규정을 들어 강한 경고를 보낸 바 있다.


이번 소송이 최근 비중을 늘리고 있는 해외 주식 투자의 잠재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도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 5월 중장기(2017~2021년) 기금운용계획을 확정하면서 지난해 말 전체 금융자산 대비 13.7%인 해외 주식 비중을 오는 2021년까지 25% 내외로 늘리기로 했다. 저성장·저금리에 기금운용 수익률을 높이고 과도한 국내 증시 지배력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인 셈이다. 하지만 해외 주식 투자에 따른 손실위험이 지금보다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21년 국민연금 기금 규모가 1,000조원을 넘어설 것이 유력한 점을 감안하면 250조원을 해외 주식에 투자하게 된다. 보건복지부의 장기재정추계에 따르면 국민연금기금은 2043년 2,561조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줄기 시작해 2060년 고갈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중장기 기금운용의 방향이 해외로 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제2, 제3의 폭스바겐 사태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며 “소송 규모를 떠나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투자 손실을 발생한 해외 기업에 대해 처리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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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우·박호현기자 ingaghi@sedaily.com

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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