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신약 하나만 성공하면 수십조원의 ‘잭팟’을 터뜨릴 수 있는 곳이 바로 제약 업계다. 실제 애브비의 자가면역치료제인 ‘휴미라’는 지난해에만 연간 140억달러를 벌어들였다.
하지만 신약 하나가 나오려면 다른 신약의 실패비용까지 포함할 경우 최소 수조원이 든다. 이 때문에 한미약품의 경우 혁신 신약을 자체 완성하지 않고 ‘라이선스아웃(기술수출)’이라는 방법으로 글로벌 제약사에 넘기는 방법을 택했다. 한미약품이 최근 베링거인겔하임으로부터 기술수출 해지를 통보받은 후 ‘기술수출 거품론’이 일고 있지만 자본이나 네트워크가 부족한 국내 업체 입장에서는 이 같은 방안이 최선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다. 이른바 ‘한미약품 쇼크’에도 국내 업체가 ‘메이저 플레이어’로 성장하려면 글로벌 제약사라는 ‘거인의 등’에 올라타는 전략을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3일 업계에 따르면 해외 업체와의 성공적 제휴 사례로 첫손에 꼽히는 국내 업체는 지난 2012년 미국 바이오젠아이덱과 합작 형태로 설립된 삼성바이오에피스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지난해 12월 ‘브렌시스’ ‘렌플렉시스’ 등 2종의 바이오시밀러(복제약)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은 데 이어 자가면역질환 억제제인 ‘휴미라’와 유방암치료제 ‘허셉틴’도 내년 상반기에 상용화할 방침이다. 다른 바이오시밀러 업체들이 설립 후 제품 출시까지 8년 가까이 걸리는 데 비해 그 기간을 절반으로 단축한 셈이다.
핵심 비결은 해외 업체와의 공격적 제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2014년 2월 미국 제약사인 머크와 바이오시밀러 공동개발 및 상업화 계약을 체결한 후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보다 속도가 붙었다. 특히 머크가 삼성바이오에피스 제품의 140여개국 유통·판매를 맡고 있어 신약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다.
여타 국내 업체들 또한 해외 업체와의 제휴를 강화하고 있다. LG생명과학은 2012년 일본 모치다제약과 공동개발 협약을 통해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동아쏘시오홀딩스는 일본 메이지세이카파마와 공동 설립한 동아메이지바이오(DMB)를 통해 바이오시밀러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동아에스티가 올 4월 미국 토비라와 비알코올성지방간염치료제 수출계약을 맺었으며 보령제약은 올 5월 쥴릭파마와 고혈압치료제 수출계약을 맺는 등 네트워크가 확대되는 모습이다.
이 같은 해외 동맹군 확보 전략은 국내 제약 시장의 규모를 생각하면 선택이 아닌 필연이다. 2014년 기준 국내 제약 시장 규모는 193억달러 수준으로 노바티스(461억달러)나 화이자(445억달러), 로슈(401억달러) 등 단일 글로벌 제약사 매출의 절반도 안 된다. 반면 2011년 포브스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신약개발 관련 평균비용(실패 약품 개발비용 포함)은 최대 13조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아스트라제네카가 가장 많은 117억달러가 들었고 글락소스미스클라인(81억달러), 사노피(79억달러), 로슈(78억달러), 화이자(77억달러) 순이었다. 여재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전무는 “한미약품이 신약을 직접 상용화하려 했다면 임상 등에 따른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한미약품이 기술개발로 벌어들인 수입을 다시 연구개발(R&D)에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인프라를 다질 경우 글로벌 사업자로 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삼성을 비롯해 LG·SK 등의 대기업이 잇따라 바이오·제약 산업에 뛰어들면서 국내 대기업의 해외 바이오 벤처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CB인사이트가 뽑은 90개 의료기기 벤처 중 삼성벤처투자가 투자한 ‘얼리센스’ 외에 국내 업체의 투자 사례가 없다는 점에서 보다 공격적인 움직임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지역별·인종별로 약에 대한 반응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현지 업체와의 제휴를 통한 임상실험 등도 글로벌 시장 진출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