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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컬처]열여덟 빠순이, 오빠가 삶의 전부였지만…이젠 쓴소리도 해야죠

11월 창간 '잡지 빠순' 집필·기획자 인터뷰

한류 발전 원동력 '빠순이 문화' 20년-다각도 분석·내부 비판

"지나친 신성화·배타주의 등 자성적 담론 제시"

"동료 빠순이들 비난 많겠지만-문제 인식·개선돼야 팬덤 발전"



“쯧쯧쯧 저기 또 미친 빠순이 있네. 내가 부모였음 머리를 빡빡 밀어버렸을 것이야.”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한 중년 남자(성동일)가 아이돌 가수에 열광하는 TV 속 소녀(정은지)를 보며 혀를 찬다. 열일 제치고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오빠’를 쫓아다녀 손가락질 받던(는) 소녀들, 그러나 1990년대를 기점으로 한류 발전의 원동력이 된 존재. 그들이 바로 빠순이다. 한류 20년을 맞아 ‘빠순이 문화’로 대표되는 대중문화 팬덤에 대한 재평가도 진행되고 있다. 오는 11월 창간 예정인 ‘잡지 빠순’도 20년간 유지돼 온 한국 팬덤 문화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특히 내부 비판의 과감한 칼을 들이대는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 “발전적인 빠순이 생활을 위해 뭉쳤다”는 9명의 ‘잡지 빠순’ 집필진 중 총괄 기획자 조예은과 집필·기획자인 전새봄·피봇(닉네임)을 만났다. 편집·디자인 분야 종사자인 세 사람은 소위 ‘1세대 빠순이’로 출발해 다양한 팬덤 문화를 목격하고 경험해 왔다.

“한류 발전 원동력 ‘빠순이 문화’ 20년…다각도 분석·내부 비판”


굳이 포장할 생각은 없었단다. 적나라한 ‘잡지 빠순’이라는 이름 이야기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팬 상당수가 젊은 여성이고 남성 팬과는 구별되는 행동이 많죠. 이 같은 활동에 대한 여성 혐오적인 시선도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는 점에서 ‘빠순이’라는 단어를 순화 없이 그대로 가져가기로 했어요.”(예은) 팬 문화의 기초를 다지고 발전시켜온 주체이자 사회적인 비하의 대상으로 차별받아온 ‘양면적인 존재’로서의 빠순이를 그대로 드러내고 싶었다는 것이다. 평소 소셜미디어를 통해 서로의 글과 활동을 눈여겨보던 이들은 그렇게 의기투합했다.

잡지 빠순은 ‘빠순이여 궐기하라’ 같은 우리끼리 문화와는 거리를 둔다. 대신 지나친 ‘오빠 신성화’나 배타주의, 여성혐오 등에 의해 변질되는 팬덤에 대한 자성적 담론을 제시한다. “오빠들에 대한 쓴소리는 금기이고, 일상에 적용되는 기준은 ‘오빠’ 앞에서 달라지죠. 외국인 팬덤을 ‘외국인 바퀴벌레’라는 의미의 ‘외퀴’로 부르며 비하하기도 하고요.”(피봇) “소속사 직원의 팬 폭행이나 팬덤 내부의 외국인 비하 같은 사건이 터지면 한 번 크게 끓어올랐다가 다시 묻히곤 해요. 개선 없이 같은 일을 반복하느니 누군가 나서서 이런 문제를 지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새봄) 창간호에서 다룰 이야기도 아이돌의 연애를 허용하지 않거나 아이돌의 불법 행위까지 무조건 옹호하는 행태, 외국인 팬 비하 현상 등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다.

‘잡지 빠순’ 집필진이 특정 기간 국내 팬덤의 주요 이슈와 소셜미디어 상에서의 주요 반응을 담은 ‘K빠순이 기록일지’와 아이돌 그룹 엑소의 찬열·카이를 캐릭터화 한 인형을 들고 있다.‘잡지 빠순’ 집필진이 특정 기간 국내 팬덤의 주요 이슈와 소셜미디어 상에서의 주요 반응을 담은 ‘K빠순이 기록일지’와 아이돌 그룹 엑소의 찬열·카이를 캐릭터화 한 인형을 들고 있다.


“오빠 불법행위 무조건 옹호 행태·지나친 신성화 등 자성적 담론 제시”


소셜 미디어에서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하며 비난에 노출된 바 있기에 ‘잡지 빠순’에 대한 동료(?) 빠순이들의 비난도 단단히 각오하고 있다고. “소속사 직원이나 경호원에게 본보기로 폭행을 당하는 팬을 보며 같은 빠순이조차 ‘쟤가 잘못했네’라고 하죠. 공개 방송에 참여한 팬을 20여 시간 동안 길거리에 방치한 사건에 대해 소속사에 인권침해 중단 및 사과를 요구하는 서명 운동이 있었는데, 정작 자신들의 일임에도 오빠들에게 피해가 간다며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않고요. 스스로 빠순이임을 자각하고 문제 인식과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때 비로소 팬덤도 발전할 수 있음을 말하고 싶어요.”(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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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빠순이들 비난 많겠지만…문제 인식·개선돼야 팬덤 발전”

세 사람은 ‘앞으로 다룰 주제는 무궁무진하다’고 입을 모았다. 전새봄과 피봇은 “인권이라는 주제만 봐도 아이돌·소속사 직원·팬·외국인 등으로 줄기를 다양하게 나눌 수 있다”며 “팬 문화 외에 산업 구조 전반에 대한 내용까지 매 호마다 주제를 잡아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잡지 빠순 창간호는 A4 100페이지 분량으로 500부가 제작된다. 외부 필진에게도 원고를 부탁해 콘텐츠를 구성하고 있다. 10월엔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텀블벅을 통해 온라인 판매(발간은 11월)에 나서고, 11월엔 독립출판 축제 ‘언리미티드 에디션’과 독립서점을 통해 잡지를 선보이기로 했다. 세 사람은 “누군가 잡지 빠순을 보고 문제를 제기하고 더 발전적인 논의를 끌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런 기반을 까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송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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