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기로에 선 K-바이오] 생명과학-금융공학 결합해 분산투자...신약 '잭팟' 확률 높인다

<2> 메가펀드가 '도박'을 '현실'로

10년 동안 2억弗 드는 신약개발, 성공률 5% 불과

메가펀드로 수백개 사업 투자땐 대박 가능성 커져

제약사 부담줄여 R&D 촉진...바이오 육성 지름길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캔서X’ 팀은 암 치료 신약 개발을 위한 ‘메가펀드’를 준비하고 있다. 내년 하반기에 출범할 예정으로 운용자금은 최소 5조원, 최대 15조원이 목표다. 일반적으로 신약 개발에는 10년간 2억달러(약 2,200억원)가 든다. ‘잭팟(신약 성공)’이 터질 경우 추후 10년간 매년 20억달러를 벌 수 있지만 성공률은 5%에 불과하다. 스위스의 노바티스나 로슈, 미국의 화이자 같은 글로벌 제약사를 제외하고는 어떤 기업도 신약 개발에 쉽게 뛰어들지 못하는 이유다. 말 그대로 도박이기 때문이다.

생명과학과 금융공학을 결합한 메가펀드는 도박을 현실로 바꿔준다. 대규모 자금을 분산투자해 신약 개발 연구를 촉진하고 투자자도 합리적 수준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도록 펀드 구조를 짰기 때문이다. MIT 측은 “5조원짜리 펀드를 200개 연구에 나눠 투자할 경우 신약 개발도 지원하면서 안정적인 수익이 가능하다”며 “한국이 뒤처진 바이오 산업을 한 단계 도약시키려면 대규모 투자가 해법”이라고 설명했다.


어떻게 이런 마법이 가능할까. 대출을 떼일 확률이 각각 90%인 A와 B가 있다고 치자. 한 사람에게 1,000원을 빌려줄 경우 모두 돌려받지 못할 확률이 90%에 이른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500원씩 빌려주면 81%로 떨어진다. 10명에게 100원씩 빌려주면 다 잃을 확률이 34.8%로 급감한다.

메가펀드는 이 같은 간단한 계산법을 신약 개발에 적용한 경우다. 신약 개발은 성공률이 5%에 불과하지만 성공만 하면 10년간 매년 20억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다. 수익률이 무려 100배에 달한다. 막대한 실탄을 무기로 수백 개의 신약 개발에 분산투자만 할 수 있다면 성공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캔서X 팀은 메가펀드가 성공하려면 최소 5조원의 운용자금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 팀이 과거 신약 개발 사례를 분석한 결과 5조원을 총 200개 연구사업(임상 전 100개, 임상 1상 100개)에 나눠 투자할 경우 연평균 수익률은 약 8.9%로 예상됐다. 손실이 날 확률은 20%, 5~15% 수익률은 68%, 15% 이상의 수익률을 올릴 확률은 35%였다. 15조원 규모의 펀드라면 연평균 수익률은 약 11.4%에 달한다. 펀드가 클수록 좋은 이유다. 150개 프로젝트에 각각 2억달러씩 투자할 경우에도 최소한 2개 이상이 성공할 확률은 99.6%, 다섯 개 성공 확률은 87.5%에 이르렀다. 300억달러를 투자해 최소한 400억달러를 거둬들일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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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은 더 있다. 5조원을 조성하더라도 절반 정도의 자금은 시장에서 투자가들로부터 조달할 수 있다. 즉 2조5,000억원은 정부나 공공기관·제약사 등 바이오·제약사업 육성이 시급한 곳이 대더라도 나머지는 평균 수익률을 기반으로 채권을 발행하면 된다.

신용보강도 가능하다. 현재 MIT는 메가펀드를 만들면서 앨프리드슬론재단 같은 공익재단이 펀드에 보증을 서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공익재단은 백신이나 질병퇴치사업에 직접 돈을 투자하는데 메가펀드를 이용할 경우 해당 사업을 지원하면서도 실질적인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용보증기금은 국내 중소기업 대출을 보증해주는데 보통 100원으로 10배가량인 1,000원 이상의 은행 대출을 보증해준다.

메가펀드는 △신약 개발 촉진 및 국민건강 제고 △제약사 연구개발(R&D) 비용 대폭 절감 △국내 바이오·제약산업 육성 △일자리 창출 △여유자금 투자처 제공 등의 효과를 낼 수 있다. 특히 국내 대형 제약사의 연매출이 1조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메가펀드는 기업의 신약 개발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다. 신약 개발은 단계가 진행될수록 성공률은 떨어지고 비용은 급증하는, 이른바 ‘죽음의 계곡’ 구간을 맞게 된다. 자금력이 부족한 국내 기업이 신약 성공 가능성이 있는데도 중도 포기하거나 기술만 해외로 수출하는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 아울러 메가펀드가 출범하면 국내 업체들은 자연스레 글로벌 기업들과 인적·물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5조~15조원 규모의 펀드를 만드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는 게 금융 업계의 시각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한 돈만 94조9,000억원에 달하고 국민이나 신한은행 같은 주요 은행의 자산도 300조원이 넘는다. 여기에 산업은행이나 중소기업은행, 한국투자공사(KIC) 같은 기관을 더하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얘기다. 정부도 바이오시밀러(복제약)보다는 신약 개발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김영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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