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엔터]"달달한 영화는 없나요" 스크린서 사라진 멜로

투자사 "크게 투자해 크게 벌자"

블록버스터 열풍에 설자리 잃어

실력파 작가·감독 잇따라 방송행

여배우들도 안방극장으로 눈돌려

"한국형 멜로 관심 끊긴게 아니라

볼만한 선택지 많지 않은게 문제"

8월의 크리스마스8월의 크리스마스


“멜로 미치게 하고 싶죠. 그런데 영화 시장에 멜로 시나리오 자체가 없어요.” 얼마 전 배우들과의 인터뷰에서 “왜 멜로를 하지 않느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은 배우들이 하나같이 이렇게 대답했다.

극장가에서 멜로 영화가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다. ‘부산행’, ‘곡성’, ‘밀정’ 등 한국영화계의 대세인 대작이 커다란 성공을 거둔 반면 ‘남과 여’, ‘나를 잊지 말아요’, ‘그날의 분위기’ 등 멜로의 흥행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대세였던 멜로 영화는 왜 갑자기 내리막길을 걷게 된 걸까. 영화 시장에서 멜로가 자취를 감추게 된 이유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영화 산업의 재편 △시나리오 작가들의 드라마 작가로의 전향 △여배우의 상대적 기근 현상 등의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내 머리 속의 지우개


무엇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영화 시장은 급격하게 거대 자본화된 것이 컸다. ‘크게 투자해서 크게 벌자’는 전략이 강해지면서 대박이라야 고작 300만 정도인 멜로는 철저하게 외면받기 시작했다. 투자배급사들이 관객 1,000만 이상을 동원한 태극기 휘날리며·실미도(2003), 괴물(2006) 등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영화들을 본보기로 삼아 대작 만들기에 집중한 것도 이 시점부터다.


블록버스터 전략에 따라 영화의 소재와 주제도 달라졌다. 영화 관객층을 2030에서 6070까지 확장하기 위해 역사물이 유행한 것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명량(2014), 국제시장(2014), 관상(2013), 인천상륙작전(2016), 밀정(2016) 등이 그런 맥락에서 제작됐다. 한 시나리오 작가는 “로맨틱 코미디류를 가져가면 모든 연령층이 볼 수 있는 역사물이 시장성이 있다며 퇴짜를 놓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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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봄날은 간다


멜로 시나리오 작가들의 드라마로의 진출도 멜로 기근을 가속화했다. 드라마 ‘시그널’과 ‘싸인’의 김은희 작가는 영화 ‘그해 여름’의 각본을 썼고, 드라마 ‘연애시대’와 ‘청춘시대’ 등으로 유명한 박연선 작가 또한 멜로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등의 명작 멜로 각본에 참여한 허진호 감독조차 올해 ‘덕혜 옹주’라는 영화계 트렌드인 역사물로 장르 변화를 시도했다. 또 다른 시나리오 작가는 “어떤 이유로 방송으로 갔든 잘된 케이스가 많다”며 “작품이 엎어지면 돈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은 영화보다는 안정적으로 수입이 보장되고 영화는 감독 중심 드라마는 작가 중심이다 보니 작가에 대한 처우도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영화 ‘약속’ 포스터영화 ‘약속’ 포스터


티켓 파워를 가진 여배우들의 감소와 남성 캐릭터 중심의 영화의 전성기도 멜로의 위축을 낳았다. 김혜수, 전도연 등 70년대 출생 배우들을 이을 80~90년대에 출생한 ‘스크린 스타’는 전지현, 손예진, 한효주 정도다. 반면 송중기, 조인성, 김수현, 주지훈 등 ‘남성 배우풀’은 풍성하다. 또 남성배우들은 남성 캐릭터 중심의 대작에서도 점점 멜로 라인의 비중이 줄어 여배우들은 단역에 가까운 조연에 머무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여배우들의 드라마 행도 잇따르고 있다. 김혜수와 전도연은 11년 만에 ‘시그널’과 ‘굿 와이프’로 각각 안방극장에 복귀했다. 앞서 전도연이 출연한 ‘남과 여’, ‘무뢰한’ 등은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21만, 41만을 동원하는 등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냈다. 장순성 신씨네 기획이사는 “김혜수, 전도연, 이미숙 등 카리스마 있는 여배우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이들마저 티켓 파워가 약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클래식클래식


그러나 멜로에 대한 수요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비긴 어게인’, ‘미 비포 유’, ‘카페 소사이어티’, ‘사랑이 이끄는대로’,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등 예술 영화를 표방한 영화들을 국내 관객들이 꾸준히 찾고 있는 것.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 영화가 최근 다양성을 상실한 측면이 크다”며 “멜로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볼만한 멜로 선택지가 많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연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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