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골프의 ‘개척자’ 박세리(39·하나금융그룹)가 팬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박세리는 13일 인천 스카이72 골프장 오션코스(파72)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1라운드 경기를 마친 뒤 공식 은퇴식을 갖고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지난해 이 대회 우승자 렉시 톰프슨(미국)과 펑산산(중국)이 ‘영원한 골프여왕’의 현역 마지막 라운드를 같은 조에서 동반했다.
8오버파 80타의 스코어는 중요하지 않았다. 마지막 18번홀 퍼트를 하고 볼을 홀에서 꺼낸 박세리는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박세리는 국내 유일의 미국 LPGA 투어 경기인 이 대회 초대 챔피언(2002년)이기도 하다.
중학생 때 이미 ‘프로 잡는 아마추어’로 빼어난 기량을 보인 박세리는 국내에 골프가 생소하던 시절 미국에 진출해 1998년 메이저대회인 맥도날드 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같은 해 역시 메이저대회인 US 여자오픈에서는 워터해저드에 맨발로 들어가 샷을 날리는 투혼을 보여주며 우승, 당시 외환 위기로 실의에 빠진 우리 국민에게 큰 감동과 희망을 안겨줬다. 20년 가까운 LPGA 투어 선수 생활 동안 메이저 5승을 포함해 통산 25승을 거둔 박세리는 2007년 아시아 선수 최초로 LPGA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많은 여자 선수들에게 영향을 미쳐 세계 최강 한국 골프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박세리의 활약을 보고 골프를 시작한 ‘세리 키즈’ 세대 선수들이 미국과 일본 등 세계 주요 무대를 장악하고 있다. 올해 은퇴를 앞두고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감독으로 참가해 박인비(28·KB금융그룹)가 116년 만에 여자골프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일조하며 마지막까지 역사를 썼다.
이날 여느 대회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대회장에 나온 박세리는 샷과 퍼트 연습을 한 뒤 경기에 임했다. 경기 후 이 골프장 18번홀에서 열린 은퇴식에는 동료 선수와 골프 관계자는 물론 골프팬들이 참석했다. 팬들은 ‘사랑해요, 세리’라는 글귀가 적힌 빨간 수건을 들고 박세리가 골프채를 내려놓는 순간을 함께했다. 박세리가 단상에 오르자 팬들은 ‘고마워요 세리(Thanks Seri)’라고 씐 모자를 벗어 일제히 흔들며 아쉬움을 달랬다. ‘영원한 골프전설,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같은 내용의 현수막도 눈에 띄었다. 박인비와 선동열, 김세진 등도 자리했다.
은퇴식에서 동료들의 메시지 등이 담긴 영상을 보며 다시 눈물을 쏟아낸 박세리는 “여러분의 성원이 있어 제가 있을 수 있었다”면서 “고생도 많았지만 얻은 게 많아 행복하다”고 돌아봤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아널드 파머처럼 골프 발전에 공헌을 하고 선수 박세리가 아닌 후배들을 위해 도움이 되는 박세리로서 많은 일을 하고 싶다”는 다짐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