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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프리즘] '공항가는 길' 불륜인데 망까지 봐주고 싶다고?

시쳇말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했다. 하지만 요즘 드라마상에서는 이 말이 통하지 않는 것 같다. ‘불륜현장이지만 망을 봐주고 싶다’는 이야기가 쏟아진다. 이쯤되면 ‘내가 하나 남이 하나 똑같은 로맨스’ 아닌가.

시청률 하락에도 불구하고 KBS2 ‘공항가는 길’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순수함을 앞세운 멜로형 불륜에 호불호는 극과 극으로 나뉘고 있다. 20년 전 ‘애인’이 불러일으켰던 불륜미화 문제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복수, 유혹을 거쳐 순수함을 앞세운 형태로까지 이어졌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여전하다.


지켜야 할 가정이 있는 두 사람의 외줄타기식 사랑은 아슬아슬하다. 피바람이 불기 직전의 액션영화보다 스릴있다. ‘공항 가는 길’은 서로의 가정에 극단적인 상황을 입혀 감정이입을 극대화하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서로 위로하는 관계를 통해 공감을 이끌어낸다. 단순하면서도 가장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을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순수’라는 예쁜 포장지를 까면 ‘막장’이 나오는, 불륜드라마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셈이다.

KBS2 ‘공항 가는 길’ 캡처KBS2 ‘공항 가는 길’ 캡처


이 드라마에 꼭 불륜이라는 설정이 필요했는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두 주인공의 사랑의 장애물로 꼭 서로의 가정이 필요했을까. 이는 드라마상 핵심적인 장치로 둘 사이를 확실하게 가로막는다. 이와 같은 상황 설정은 ‘부모의 반대, 경제적 격차, 신분격차, 삼각관계, 친구에서 애인으로의 확장’ 등 무궁무진하다. 불륜도 이중 하나라고 생각했을 때 크게 문제될 부분은 아니다.

‘공항 가는 길’은 불륜이라는 설정을 극단적으로 활용한다. 주인공의 사랑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서로의 배우자를 비현실적 인물로 그려냈다. 최수아(김하늘)의 남편 박진석(신성록)은 말 그대로 ‘남의 편’이다. 아내에게 ‘자네’라는 표현을 쓰고, ‘와이프는 집에 있는 가구’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비행기 기장임에도 불구하고 현위치를 아내에게 알려준 적 없으며, 딸에 대한 교육방침도 지극히 보수적이다. 시어머니는 뜬금없이 월급을 달라며 떼까지 쓴다. 이쯤 되면 길을 걷다 전봇대라도 붙들고 신세한탄 하고 싶은 심정 아닐까.


서도우(이상윤)의 아내 김혜원(장희진)의 아내 역시 요상하기는 마찬가지. 사업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는 그녀는 친딸(어떤 반전이 기다리는지 모르지만)이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8회에서는 죽기 전 말레이시아에서 집으로 돌아오고 싶다던 딸에게 오지 말라고 하는 장면까지 등장해 숨겨진 비밀을 예감케 했다. 남편의 불륜을 눈치 챈 그녀는 서도우의 작업실 앞에서 서성이던 최수아를 보며 차안에서 ‘들어가’라고 읊조리다 ‘들어가지마’라고 소리지르며 경적을 울린다. 이런 캐릭터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은 예상대로 부정적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본 “기르던 개가 죽어도 저렇게는 안한다”는 말이 딱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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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저사람이랑 여태껏 어떻게 살았지?’ 궁금할 만큼 기상천외한 인물을 서로의 배우자로 등장시킨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불륜의 당위성을 고리타분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시청자가 이들의 사랑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다. 여기에 애니의 죽음, 우연한 만남 등을 통해 차근차근 밟아온 ‘서로에 대한 위로’는 잘 구워진 스테이트에 최상급 소스를 입혀낸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KBS2 ‘공항 가는 길’ 캡처KBS2 ‘공항 가는 길’ 캡처


두 사람은 서로에게 빠져들자 한 가지 약속을 한다. 3무(無) 바라는 것, 만지는 것, 헤어지는 것 없이 만나자고 한다. 꼭 이렇게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한다. 그리고 약속이 깨지면 행동에 거침없어진다. 지난 8회에서 둘은 끝내 약속을 깨버렸다. 격정적인 키스, 이어지는 새벽 일출. 로맨틱한 에피소드 뒤에는 숨겨진 맹점이 있다. 순수한 사랑에 육체적 욕망이 끼어드는 순간 두 사람도 서로의 배우자와 똑같은 사람이 됐다는 사실이다.

창가에서 일출을 바라보며 이들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작가의 전작 ‘밀회’의 흐름과 비슷하다. 이어 “큰 사랑을 받아본 사람은 어떤 시련이 닥쳐도 담담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잊지 마라. 두고두고 힘이 될 것”이란다. 이 대사를 통해 작품의 핵심 메시지와 결론을 유추해볼 수 있게 됐다. 힌트는 최수아의 고향이자 서도우의 어머니가 남긴 편지에 등장하는 장소 ‘제주도’다.

이제 두 사람의 관계는 모두 다 알고 당사자만 모르는 지경까지 다다랐다. 서로의 관계를 자신들만 부정한다. 서도우와 하룻밤을 보낸 최수아는 혼란스런 마음으로 송미진을 찾아간다. 그리고 “유부남은 다 똑같다. 아직까지 내가 쓸만하다는 자신감 얻으려고, 결정적인 순간에 겁먹고 내뺀다”는 송미진에게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고 말하며 유부남과의 불륜을 간접적으로 시인한다. 자기모순으로 인한 혼란이 드디어 시작된 셈이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7~8%의 고정 시청자 이상을 확보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에 다다랐다. 이들의 일탈을 문제의식에 담아낼지, ‘불륜미화’라는 비판에도 순수함을 앞세운 사랑으로 끝을 낼지 ‘공항 가는 길’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최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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