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인 16일 여야는 하루 종일 ‘송민순 회고록’을 놓고 난타전을 벌였다. 새누리당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북 안보관을 놓고 맹공을 퍼부었고 더민주는 “미르재단 의혹을 덮는 색깔론”이라며 역공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최근 회고록을 통해 문 전 대표가 지난 2007년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에 앞서 비선을 통해 북한의 의견을 듣고 기권하도록 결정하는 데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은 2012년 대선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남북 정상회담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NLL 포기 선언’이라며 문 전 대표의 안보관에 대해 총공세를 펼쳤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문 전 대표를 겨냥해 “북한 당국에 물어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 찬성 여부를 결정한 사람들은 다시는 이 정부에서 일할 수 없도록 국민과 함께 만들어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서울 양천구 목동운동장에서 열린 제34회 대통령기 이북도민체육대회 축사에서 “북한 인권결의안에 대해 우리나라 대통령과 대통령 비서실장, 국가정보원장, 그리고 여기에 관계된 장관들이 찬성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를 북한 당국에 묻고 북한이 반대하니 기권했다는 기가 막힌 소식을 접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 대표는 전날에는 “북한과 내통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규정했다.
북핵 강경론자로 통하는 원유철 새누리당 의원은 문 전 대표의 정체성을 문제 삼았다. 원 의원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문 전 대표가) 북한 세습 독재정권으로부터 북한 주민 인권보호를 위한 결의안을 북한 정권에 물은 뒤 처리하자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황당한 입장을 내놓았다고 한다”며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역사관, 정체성을 가진 정치세력에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코 맡길 수 없다”고 비판했다. 유승민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에 당연히 찬성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찬성을 주장하는 외교부의 의견을 묵살했을 뿐 아니라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대한민국의 찬성, 기권 여부를 북한 주민의 인권을 짓밟고 있는 북한 정권에 물어봤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당이 문 전 대표를 집중 공격하는 것은 문 전 대표가 최근 대규모 싱크탱크를 발족하고 광폭의 대선 행보를 보인 데 따른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문 전 대표의 안보관을 문제 삼으면서 이탈한 보수와 중도층을 결집시키려는 전략인 것으로 풀이된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도 “적절하지 못하다”며 문 전 대표를 비판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송 전 장관의 저서 내용이나 당시 대북관계를 고려할 때 외교적 협의는 가능하지만 만약 지시를 받았다면 주권국가로서 적절하지 못한 것”이라며 “저도 대북 대화론자이고 북한과 대화 협상을 했지만 이런 사례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 위원장은 “집권여당도 틈만 생기면 색깔론 구태를 재연하며 북과 내통했다는 등의 공격을 하는데 이 같은 것은 지양해야 한다”며 양비론으로 균형을 맞췄다.
문 전 대표 측은 이에 대해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 당시 결의안에 대한 결정을 북에 물어보고 결정할 이유도 없었고 물어볼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문 전 대표 대변인 격인 김경수 의원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기권하기로 결정한 사항에 대해 당시 남북 정상회담 직후 다양한 대화가 이뤄지던 시점에 기권 입장을 북에 통보하기로 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송 전 장관의 회고록 내용을 전면 반박한 것이다. 문 전 대표는 이정현 대표가 전날 ‘북한과 내통했다’고 표현한 것과 관련해 “대단한 모욕”이라며 발끈했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찬성과 기권으로 의견이 나뉜 당시 회의에서 다수가 기권이 바람직하다고 해 노 전 대통령이 기권을 결정했다. 문 전 대표는 다수 의견을 따랐을 뿐”이라며 “그 이후에 북한의 입장을 듣느냐 안 듣느냐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문 전 대표가 관여한 바 없다는 게 팩트”라고 강조했다. 차기 대선후보 중 한 명인 박원순 서울시장도 페이스북에 ‘인권안 기권’에 대한 여당 공세에 “판문점 총질을 사주한 총풍사건”을 거론하면서 “당신들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정치가 최소한의 염치도 잃었다”며 비판에 가세했다. /김홍길·박효정기자 wha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