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계곡을 잇는 구름다리 ‘벤처나라’

정양호 조달청장



가을이다. 많은 사람이 단풍에 이끌려 산을 찾는다. 웬만큼 알려진 산이면 계곡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가 있다. 구름다리가 놓인 절벽 앞에서 한 창업기업 대표가 한숨짓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데스벨리(Death valley)’를 얘기했다. 계곡 건너편에 성공이 보이는데 건너기가 너무 어렵다고 한다.

데스벨리는 새로 창업한 기업이 경영상 어려움과 판매부진을 버티지 못하고 도산하는 3∼7년의 기간을 말한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이 있는 기업도 초기에 판매부진의 보릿고개를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벤처·창업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은 아직 시장에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신상품, 즉 산업 간 융합상품이나 아이디어 상품이 많다. 성공하면 대박을 칠 수도 있지만 초기 판로 개척이 쉽지 않다. 공공시장 진입 문턱이 높고 판매는 더욱 어렵다. 공공기관들도 제품이 마음에 들어도 일단 기관 납품 선례가 없으면 구매를 꺼린다. 구매 선례가 없어 성공 선례를 만들 수 없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연간 55조원을 집행하고 있는 조달청도 벤처·창업기업을 위한 지원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기존 제도 이용에는 한계가 있다. 각종 제도에서 심사 요건을 다소 우대한다지만, 비교 대상 상품이 없고 납품 실적이 부족하기 때문에 조달시장 활용의 어려움은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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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많은 벤처·창업기업들은 공공시장에서도 수주 절벽의 3중고에 직면해 있다. 시장에 유사 제품이 없어 입찰 경쟁이 어렵고 판매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구매를 꺼리며, 아직 특허나 각종 인증을 취득해 수의계약 시장을 뚫을 수 있는 자금·인력·마케팅 역량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제 공공조달을 활용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공공조달시장이 새로운 혁신상품을 선제적으로 구매해주는 테스트 베드(Test Bed)가 돼야 한다. 벤처·창업기업이 신기술·혁신제품을 시장에 공급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활력을 돕고 청년실업 문제 해결의 지렛대 역할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조달청은 최근 벤처·창업기업제품 전용 온라인 쇼핑몰인 ‘벤처나라’를 출범시켰다. 산업통상자원부, 중소기업청, 미래창조과학부 창조경제혁신센터 등과 협업해서 기술과 품질이 우수한 제품을 엄선해 벤처나라를 통해 공급하게 된다. 기존 제도로는 공공시장 진입이 어려웠던 신상품·아이디어 제품들을 나라장터와 연계한 벤처나라에서 5만여 공공기관에 홍보하고 판매할 수 있게 됐다. 어느 창업기업 대표의 이야기가 생생하다. “우리에게는 공공시장에서 단 1건의 납품 선례라도 만들 기회가 중요하다. 그 공신력이 민수시장 판매를 촉발하고 해외 바이어와 상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를 건너면 1시간은 족히 걸릴 험한 길도 어렵지 않게 건널 수 있다. 이제 막 출범한 벤처나라가 벤처·창업기업이 데스벨리를 무사히 건너도록 도와주는 가교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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