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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에세이] '두 번째 스물' 20대의 사랑, 40대의 순간

[최상진의 리뷰에세이] 영화 '두 번째 스물'

얼마 전 친구 하나가 옛 여자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온 후일담을 털어놨다. 고등학생 시절 시도때도없이 붙어 다니던 그들은 대학 입학 후 여자친구의 바람으로 헤어졌다. 당시 친구는 나무를 깎아 활을 만들어 이들을 쏴버리겠다며 호기롭게 그녀의 학교로 찾아갔지만, 새 남자친구가 체대생인 관계로 숨어서 지켜만 보다 돌아왔다.

심정을 묻자 그는 ‘오랜 친구를 보내는 기분’이라고 답했다. “사랑은 순간이되, 추억은 가슴에 남는다”고 말한 그는 소주 한 잔을 들이키고 주점을 나섰다. 그를 따라 나서며 “추억은 사랑이 남긴 유일한 선물”이라고 말했다. 씩 웃어 보이는 그의 얼굴에 그리움이 가득했다.






영화 ‘두 번째 스물’은 40대에 접어든 옛 연인이 우연히 만나 7일간의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사랑이 남긴 추억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10여년 전 헤어진 이들은 그저 얼마만에 만난 듯 어색하지 않다.

로맨틱한 저녁과 불같은 밤을 보낸 이들은 7일간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여행을 떠난다. 토리노부터 제노바, 피렌체, 몬타치노, 시에나, 만토바에 이르기까지 ‘카라바조’의 그림을 따라 걷고 타고 바라보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이들의 이야기는 과거에 멈춰있다. 당돌한 여자, 순응하는 남자. 첫 만남으로 돌아간 이들은 서로의 사랑을 처음부터 되짚는다. 삶의 흔적들은 지워버리고 종합병원 인턴과 비루한 조감독으로 돌아간 두 사람은 20대로 돌아가 서로의 몸과 마음을 탐닉한다.



이들의 사랑이 말 그대로 사랑인지, 추억의 되새김질인지 혼란스러워질때 이야기는 이별의 순간으로 넘어간다. 니탓 내탓 하던 이들은 헤어진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당시에는 처지 때문에, 자존심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아낸다. 그 끝이 오해로 매듭지어졌을 때 여자는 좌절하고 남자는 멍해진다.


작품은 끊임없이 이들의 사랑이 여행과 동시에 끝맺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서로의 아내와 남편도, 그 흔한 시어머니도 등장하지 않고 오직 둘만의 이야기로 풀어가는 만큼 불륜에 대한 선입견도 중반 이후 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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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포선셋’의 흐름과 유사하다. 정해진 시간을 두고 이들은 서로 다른 추억에 대한 접점을 찾아간다. 과거의 이야기가 결혼에 이어 현재와 가정에 다다랐을 때 이들 앞에 카라바조의 ‘세례자 요한의 참수’가 등장하고 관계는 현실이 된다.

카라바조의 그림을 따라 여행한다는 핑계는 그때부터 두려움이 된다.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속죄는 이들에게 잠시나마의 관계, 헤어짐에 대한 미련, 지난 삶에 대한 반성으로 결론지어진다. 자연스러운 흐름은 김승우 이태란의 절묘한 호흡으로 생생하게 전달된다.



친구에게 ‘굳이 전 여자친구 결혼식에 갈 필요가 있었냐’고 물었다. 그는 “다시 만날 일이 없을 테니까”라고 답했다. 우연히 만난다는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또 사람 일이라는건 참 알 수가 없다. 그의 말처럼 지난 인연과 마주한다는건 영화같은 일이기만 할까.

참 어리석어 보이지만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봄직한 일이다. 영화는 이 상상을 현실로 만들었다. 두 사람의 모습이 지난 사랑의 추억을 떠올리게 할지, 불륜에 대한 비겁한 변명일지, 꿈일 뿐인지 선택지는 관객에게 넘겨졌다. 물론 영화에서 보고 상상만 하는게 여러모로 이롭겠지만. 11월 3일 개봉.

최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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