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퇴짜맞은 노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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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자 발표를 앞둔 1964년 10월. 노벨상을 주관하는 스웨덴 한림원에 한 통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장폴 사르트르가 노벨상을 수여해도 받지 않겠다며 사전 통보한 것이었다. 하지만 편지를 열어보기도 전에 투표가 진행됐고 사르트르는 결국 그 해의 수상자로 선정됐다. 사르트르는 이번에는 수상을 거부하는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그는 “노벨위원회의 평가를 인정할 수 없으며 문학적 우수성을 놓고 등급을 매기는 것은 부르주아 사회의 습성”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11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노벨상은 수상자 선정과정에서 갖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수상 자체를 거부하거나 시상식에 불참하는가 하면 자격 여부를 놓고 공정성 시비에 휘말린 적도 적지 않았다. 사르트르는 실패했지만 수상을 모면(?)한 사례도 있다. 스웨덴의 에리크 악셀 칼펠트는 심사위원을 설득해 문학상 수여를 사전에 포기하게 만든 유일한 인물이다. 조지 버나드 쇼는 1925년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자 알프레드 노벨을 악마에 비유하며 한때 수상을 거부하는 소동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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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에는 ‘닥터 지바고’로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수상을 거부하고 나서 파장을 빚었다. 그는 ‘신성한 러시아 혁명을 비방했다’며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았고 국외 추방 압력에 시달렸다. 조국을 등지지 않겠다며 구명운동까지 벌인 끝에 결국 노벨상을 포기해야만 했던 것이다. 베트남 전쟁을 끝냈던 레둑토 베트남 전 총리는 “아직 베트남에 진정한 평화가 오지 않았다”며 1973년 평화상을 마다했던 적도 있다.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밥 딜런이 줄곧 침묵을 지키고 있어 노벨상을 거부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급기야 스웨덴 한림원도 딜런과의 연락을 포기했다고 선언했을 정도다. 그는 무대에서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광대였어요. 왜 지금 저를 바꾸려고 하나요”라고 노래했다. 노벨상의 파격이 또다시 시험대에 오르게 된 셈이다. /정상범 논설위원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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