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사제총





신혼·가족 여행 단골 후보지인 필리핀 세부 하면 아름다운 풍광이 먼저 떠오른다. 에메랄드빛 해변 등 낭만만 넘실거릴 듯하나 그게 다가 아니다. 지금은 덜한 듯하지만 세부는 한때 사제총(私製銃)의 성지였다. 정확하게는 세부 섬 동쪽의 다나오 지역이 그렇다. 이곳의 사제총 제작은 스페인 식민 시절부터 내려온 전통으로 대다수의 주민이 가내수공업으로 사제총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한다고 한다. 세부산 사제총은 일본 야쿠자로 많이 흘러 들어갔고 한국 조폭과 밀렵꾼, 일부 총기 마니아들도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필리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우리나라도 사제총이 은밀하게 제조·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과거 청계천이 복원되기 전만 해도 청계천 일대에서 사제총이 불법으로 만들어져 거래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경기 남부 지역과 서울 영등포 등지의 선반·밀링 등을 갖춘 소규모 부품업체에서 암암리에 제조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1990년대까지는 그래도 점조직 등을 통해 제한적으로 거래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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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00년대 들어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일반인들도 사제총 제작 방법을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외국 사이트에서 실제 총기의 설계도면을 구하기는 그렇게 힘들지 않다. 도면을 보고 시중에서 구입한 재료를 활용해 개인적으로 총을 제작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추세다. 자동 사격은 안 되지만 단발 사격이 가능한 사제총까지 있다고 한다. 외형만 조잡할 뿐 살상력이 실제 총기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제총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5년간 불법 총기 자진신고 현황을 보면 사제 총기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경찰에 신고된 불법 총기류는 한 해 평균 4,400정에 이른다. 미신고분까지 포함하면 현재 유통되는 불법 총기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10만정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19일 서울 시내에서 경찰관이 폭행 용의자의 사제 총기에 맞아 숨진 사건은 불법 총기 소지가 위험 수위를 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한민국도 더 이상 총기의 안전지대가 아니다’라는 말만 되뇔 때가 아니다. /임석훈 논설위원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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