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눈물 마를줄 모르는데...범죄피해자보호기금 말라간다

벌금전입금 의존 80~90% 달해

충당 속도, 지출증가 못 따라가

2020년이면 기금 부족 불가피

전입금비율 상향·구상권 행사 등

재원 확충방안 다양화 시급



맞벌이 부모를 둔 A(12)양은 하교 후 늘 혼자 집에 있었다. 어느 날 택배배달원이라는 남자에게 성폭행이라는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입었다. 이후 A양은 대인기피증과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가족도 상상조차 못한 일에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던 중 경찰의 안내로 ‘해바라기센터’를 찾았다. 범죄피해자보호기금으로 운영되는 센터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소아정신과 의사와 아동심리학자 등 전문가들의 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이곳에서 A양은 심리상담과 약물치료를 받으며 상처를 치유하고 있다.

법무부가 범죄피해자지원을 목적으로 조성하는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이 머지않아 바닥을 드러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기금의 충당 속도가 지출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다. 범죄피해자 지원제도의 재원이 대부분 기금에서 나오는 만큼 안정적인 재원확보가 시급한 실정이다.

23일 한국재정학회에 따르면 현재 기금 운용 상황을 고려할 때 오는 2020년이면 기금 부족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학회가 최근 내놓은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의 재원 다양화 방안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보면 2016년 기금의 예상 지출규모는 836억원이지만 4년 뒤인 2020년의 지출총액은 1,023억원으로 급증한다. 같은 기간 기금 수입은 1,152억원에서 957억원으로 줄어 수입과 지출이 역전된다.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은 범죄피해자보호기금법에 따라 범죄피해자를 대상으로 경제·의료 지원, 심리치료, 신변보호와 법률지원 등을 위한 목적으로 조성된다. 기금 편성과 운용은 법무부에서 총괄하고 해바라기센터를 비롯해 범죄피해자에게 심리치료와 임시 주거를 제공하는 ‘스마일센터’ 등의 재원으로 쓰인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법률지원도 범죄피해자보호기금으로 운영된다. 정부가 운영하는 범죄피해자 지원제도의 대부분이 범죄피해자보호기금에 의존하고 있는 터라 기금이 바닥을 드러내면 범죄피해자 지원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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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 부족의 원인으로 지나치게 높은 벌금 전입금 의존도가 손꼽힌다. 현행법에 따르면 기금조성을 위한 벌금 전입비율은 6%로 벌금 100만원 가운데 6만원이 기금 재원으로 확보된다. 법무부에 따르면 현재 범죄피해자보호기금 재원 가운데 벌금 전입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80~90%에 이르며 나머지는 구상권을 통한 변상금 등이 차지한다. 조균석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벌금 수납액은 경기상황 등 변수에 따라 매년 달라지기 때문에 안정적이지 못하다”며 “또 벌금 300만원 이하는 사회봉사로 대체할 수 있고 5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집행유예가 적용되는 이른바 ‘장발장법’이 오는 2018년부터 시행돼 벌금 수납액은 더 줄어들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갑윤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달 19일 벌금 전입금 비율을 단계적으로 10%까지 상향 조정하는 범죄피해자보호기금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벌금 전입비율 상향 외에도 구상권 행사 강화 등을 통해 재원 확보 방식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미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등 해외에서는 범죄수익 몰수금을 범죄피해자 지원에 적극 활용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전액 국고로 편입된다”며 “해외 사례를 참고해 몰수금 활용 방안 등 기금 재원 다양화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정용 순천향대 법학과 교수는 “소극적으로 적용되는 구상권의 실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며 “범죄자가 재산을 빼돌리기 전에 이를 전담 관리하는 전문기관 설치 등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한편 법무부 관계자는 “해당 자료는 2016년 예산 초안을 기준으로 작성된 것으로 2017년 이후 예산 추이에 대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변상금 징수액을 늘리고 범죄피해자보호기금으로 지원하던 가정폭력상담소 사업을 양성평등기금으로 이관하는 등 기금 안정화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2020년 이후에도 기금 운용에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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