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비밀리에 추진하다 금융감독원과 밥그릇 싸움을 벌인다는 논란을 초래한 ‘불공정거래조사 시스템’ 구축사업이 국회의 부정적 의견에 부딪혀 좌초 위기를 맞았습니다.
시세조종 등의 혐의를 입증하려면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는데 금융위가 구축하려는 자제 조사시스템은 그런 능력을 갖추지 못했고 같은 시스템을 이미 운용 중인 금감원도 계속 문제가 생겨 15년째 보완·개선 작업을 하고 있는 걸 볼 때 금융위가 새로 구축하려는 시스템도 똑같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라는 게 국회의 지적입니다. 결론은 새 시스템을 만들지 말고 이미 있는 금감원 시스템을 활용하라는 것인데요 이현호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기자]
지난 8월 금융위 산하 자본시장조사단이 비밀리에 불공정거래 조사자료를 축적·관리하는 데이터베이스(DB) 구축 사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비슷한 시스템을 이미 운용 중인 금감원과 증권범죄 조사 업무 주도권을 놓고 밥그릇 싸움을 벌인다는 논란이 일었습니다.
당시 논란에도 불구하고 금융위는 특정 사건과 관련한 DB 열람 요청 때 금감원이 이런저런 이유로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 업무협조가 원활하지 않다며 내년 예산 5억2,000만원을 확보해 사업추진을 강행했습니다.
그런데 국회가 이 사업에 대해 제동을 걸었습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17년 예산안 분석보고서’를 통해 자조단의 자체 조사시스템 운영이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양 기관이 중복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재정적 측면에서 비효율적이라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보유한 금감원의 시스템을 현행대로 이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위가 추진하는 자체 조사시스템은 치명적 약점이 있습니다.
시세조종 분석을 위해 필요한 데이터는 유형에 따라 수천만에서 수억 건이 넘는데, 자조단의 조사시스템이 운용하는 분석 틀은 호가와 주문량 등의 데이터를 수백만 건 수준에서 분석할 수 있게 설계돼 처리 능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또 방대한 양의 거래 데이터를 거래소 등으로부터 전송받기 위해서는 시스템과 연계된 별도의 망을 구축해야 하지만, 자조단은 이메일과 USB 등을 활용하는 초보적 수준의 운용 계획을 갖고 있어 보안 취약성도 심각한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금융위는 “자조단의 업무 성격을 고려할 때 중요 사건을 자체조사하기 위해서는 시세조종 분석을 위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을 국회에서도 인정하고 있다”며 사업추진 강행입장을 밝혔습니다.
/서울경제TV 이현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