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 그대로의 날것을 보고 싶은 사람은 봉화로 가야 한다. 그곳에는 섬유강화플라스틱(FRP)으로 만들어놓은 사과·복숭아·한우·곤충 같은 조잡한 조형물이 없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이 안 좋거나 아니면 단체장의 탁월한 심미안 덕이겠지만 아무튼 그곳에는 돈 들여서 경관을 훼손하는 천박함이 없다. 그 대신 우리나라 최고의 원시림과 대자연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읍과 7개 면 소재지의 도로망을 벗어나면 이내 밀림이 햇빛을 차단해 어스름해지는 경상북도 봉화군은 대한민국 마지막 청정지역이다.
자동차로 세 시간을 달려 도착한 봉화군청에서 지도를 챙겨 향한 첫 번째 목적지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다. 춘양면 서벽리 일원이다. 여기서 일원이라 함은 부지면적이 5,179㏊에 달해 지번이 여러 개이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수목원이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와 함께 기후변화 및 전쟁·자연재해 등 재난으로부터 산림종자를 영구적으로 저장하는 시설인 ‘시드볼트’가 있어서다. 강대길 숲해설사는 “시드볼트는 노르웨이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라며 “하지만 노르웨이가 농업용 작물종자만을 보관하는 데 반해 우리는 200만종에 달하는 식물종자를 보관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밖에 호랑이 방사장인 호랑이 숲, 기후변화지표식물원, 고산식물 연구동, 자작나무원, 만병초원, 고산습원, 야생화 언덕을 조성했다. 산림청은 이를 위해 지난 2009~2015년 총 2,200억원을 투입, 조성을 마쳤으며 내년부터 정식 개장할 예정이다.
수목원을 나온 차는 승부역으로 향했다. 몇 해 전 코레일에서 운영하는 협곡열차를 타고 찾은 적이 있지만 그때는 늦겨울이어서 스산한 풍경만 구경하고 발길을 돌렸던 기억에 속이 쓰렸다. 그래서 이번에는 단풍철을 택해 기차 대신 승용차를 이용했다.
그런데 차로 가는 여정은 그야말로 지난했다. 아연을 생산하고 있는 영풍 석포제련소까지는 왕복차선이지만 이곳을 지나면서 승부역까지는 오로지 외길이다.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길로 이어지다가 군데군데 두 대가 겨우 비껴 갈 수 있도록 노폭을 확장해놓았을 뿐이다. 그래도 뭐라고 할 수 없는 것은 7~8㎞를 달리는 동안 맞은 편에서 오는 차를 만난 것은 겨우 세 차례에 그쳤기 때문이다. 길 양편으로는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검푸른 숲 아니면 낙동강의 상류가 흐르고 있을 뿐 사람의 기척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두메산골 봉화는 해도 빨리 떨어진다. 춘양면으로 나오는 길에 들어가 본 구마동계곡도 길이 좁기는 매한가지인데 그나마 들어선 지 얼마 안 돼 해까지 떨어져 버렸다. 오후6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전조등을 켜고 조심조심 운전을 해서 포장도로까지 나오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튿날 새벽 동트기 전 청량사로 향했다. 35번 도로를 따라 절반이나 갔을까. 도로 왼쪽으로 운해가 깔린 모습이 장관이다. 차를 세우고 비상등을 켜둔 채 범바위 전망대에 올라보니 아랫산의 단풍과 골 사이에 마을들은 구름이 집어삼켜 버렸다. 해가 올라오는 동쪽은 환하게 밝았지만 운해가 뒤덮인 산너머 서쪽은 아직도 검푸르다.
다시 발길을 돌려 청량사로 가는 동안 짙푸른 숲의 심연(深淵), 그 사이를 뚫고 나오는 빛의 향연(饗宴) 앞에 여러 차례 카메라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청량사로 들어가는 길은 가파르기로 따지면 기자가 섭렵한 대한민국 절 길 중 단연 최고다. 길지 않은 길이나 금세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4륜 구동차 아니면 오르기도 힘들지만 이 길을 굳이 차로 오를 필요는 없다. 봉화 같은 산동네 아니면 팔도강산 어디에서도 이런 길을 걸어볼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글·사진(봉화)=우현석객원기자
■맛집=강남회관
봉화에서 왔으면 버섯요리를 먹어봐야 한다. 산골마을 봉화가 자랑하는 특산물이 버섯이기 때문이다. 춘양면 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강남회관은 송이요리와 버섯전골이 간판메뉴인 식당이다. 버섯전골은 1인분 8,000원, 송이전골은 1인분 2만5,000원이다. 양념이 자극적이지 않고 국물 맛이 깊다. 춘양면 의양5길 4 (054)672-5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