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칼럼] 바이오 열풍, 차기정권서도 유지될까

최형욱 바이오헬스부장

中, 천문학적 투자로 韓 추월

선진국은 선두 지위 굳히는데

단순 나열식 육성책만 반복 땐

'코리아 바이오' 한순간 유행 그쳐





“얼마 전 중국 톈진에 갔더니 차세대 암 치료제인 면역항암제 임상시험계약(IND) 준비 기업만 20여개였습니다. 신약 파이프라인(후보물질) 연구는 웬만한 글로벌 제약사 수준이고 화이자·노바티스 등에서 경력을 쌓은 인재들이 득실거렸습니다. 정부에서 도와주고 민간에 돈이 넘쳐나는지 자금 걱정은 전혀 않더라고요. 한국은 어떠한가요. 앞으로 시장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커지는데도 전임상이라도 하는 기업이 거의 없습니다.”


세계적인 암 임상 권위자인 모 의과대 교수의 푸념이다. 한국 바이오 산업이 이미 중국에 뒤처졌다는 것이다. 그는 ‘2020년 바이오헬스 7대 강국 도약’이라는 정부 장밋빛 청사진도 ‘공염불’이라고 일축했다.

물론 정부도 기존의 주력 산업이 중국 추격에 밀려 힘을 잃자 미래 성장동력 마련을 위해 다각도의 바이오 육성책을 내놓고 있다. 한 바이오 업체 대표가 사석에서 “청와대가 관심이 많아서인지 정부가 먼저 애로 사항이 무엇인지 물어온다”며 “10여년 전 거의 사기꾼 취급 당했을 때와 비교하면 요즘은 사업할 맛이 난다”고 말할 정도다.


아닌 게 아니라 한미약품의 ‘늦장 공시’ 파문에도 바이오 열풍은 꺼지지를 않고 있다. 시중에는 “수십억원을 즉시 쏠 수 있으니 유망 기업만 찾아달라”는 투자가들이 넘쳐난다. 벤처캐피털 관계자들은 우후죽순으로 생긴 바이오 포럼, 살롱 등을 기웃거리기 일쑤다. 일각에서 ‘거품론’이 나오지만 요즘처럼 정부 지원과 투자 자금이 몰리면 가시적인 신약개발 성과가 날 것이라는 기대감도 크다. 고령화와 맞물려 바이오는 저성장 고착화 위기를 돌파할 유력한 수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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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바이오 강국’이라는 목표가 ‘정부의 면피성 구호’라는 회의론이 그치지 않고 있다. 바이오 산업은 인간 생명과 직결되는데다 천문학적인 개발비가 들어가는 연구개발(R&D) 집약체인 탓에 다른 산업보다 진입 장벽이 훨씬 더 높다. 이런 마당에 국내 제약 산업의 수준은 글로벌 제약 공룡들에 비해 아직 ‘소꿉놀이’에 불과하다. 국내 319개 바이오·의약 업체의 R&D 인력을 전부 합쳐봐야 겨우 5,185명이다. 글로벌 1위인 노바티스 한 기업만 6,000여명에 이른다. 선진국과의 격차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오 생태계 문화에서 더 벌어진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려고 현지 투자가들을 만났을 때였다. 국내에서 하던 대로 5년 안으로 어느 정도 이익을 내겠다고 말했다. 대뜸 “당신들은 R&D는 안 하느냐”는 반문이 돌아왔다. 기술력만 있다면 당장의 매출이나 이익은 묻지 않고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주겠다는 뜻이었다. 우리나라는 벤처한테 왜 매출이 당장 발생하지 않느냐고 따지고 단기 투기 목적의 투자만 넘쳐 난다”

한 바이오 벤처 기업 대표의 설명이다. 우리 바이오 생태계는 우수 인력 부족, 정부 컨트롤타워 부재, 벤처·대기업·학교·병원 간 끊어진 선순환 고리, 경영권 위협을 우려해 인수합병(M&A)에는 관심도 없고 ‘골목대장’에 안주하는 제약업체 오너들, 엔젤 투자가 부족 등 해결 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중국은 천문학적 투자를 통해 한국을 멀찌감치 추월했고 미국·영국·일본· 싱가포르 등 선진국은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를 앞세워 선두 지위 굳히기에 들어갔다. 지금과 같은 고만고만한 나열식 육성책으로서는 선진국을 따라잡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신약개발을 위한 10조원 정도의 바이오 메가 펀드를 만드는 등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 국면과 맞물려 관료들에게 산업화·정보화 시대를 주도했던 그들의 선배들과 같은 열정과 추진력을 기대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현 정부의 ‘코리아 바이오’ 전략이 한순간의 유행에 그치며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금융 허브’ 구상, 이명박 정부의 ‘녹색 경제’와 마찬가지로 차기 정권에서는 사라질 운명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choihuk@sedaily.com

최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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