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스키야키를 한국의 삼겹살 구이와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 스키야키는 가족들이 커다란 무쇠 냄비에 둘러앉아 간장 혹은 된장 육수에 소고기와 각종 채소를 졸여 먹는 전골 요리다. 좋은 사람과 함께 먹으면 음식의 열기에 사람의 온기까지 더해지는 음식이기도 하다. 일본인들이 “스키야키는 행복을 주는 음식”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키야키 맛집으로는 서울 광화문에 있는 일품당이 있다. 서울에서 몇 안 되는 스키야키 전문점으로 같은 음식을 하는 주변 식당이 문을 닫을 때도 꾸준히 영업을 이어왔다고 한다. “특별한 사람들과 소중한 시간을 함께하기 좋다”고 자부하는 이 식당에서 음식과 사람의 온기를 함께 느껴보자.
One go! 과감하게 씹고!
“왜 우동이 없어요?”
가족음식의 가장 큰 특징은 정해진 방법이 없다는 점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 있는 ‘삼겹살 맛있게 굽는 방법의 수’는 ‘가정의 수’와 일치할 테다. 삼겹살을 딱 한 번만 뒤집어야 육즙이 보존돼 맛있다고 하는 집이 있고, 소고기 익히듯 강불에 빠르게 익힌 후 불을 내려야 육즙이 가둬진다는 집이 있고, 건강을 위해 여러 번 뒤집어야 한다는 집도 있다. 이뿐인가. 김치를 굽기도 하고 싸먹기도 하고 고기와 함께 잘게 잘라 밥과 볶아먹기도 한다. 가족마다 입맛이 다르고 구성원의 입맛이 다르니 음식을 맛있게 먹는 방법도 무궁무진할수밖에 없다.
스키야키도 마찬가지다. 기본 재료로 소고기 파, 버섯, 실곤약, 두부 등이 있지만 다른 것을 더해도 좋고 빼도 좋다. 버섯도 팽이, 표고, 송이 등 집마다 다양하게 넣기도 한다. 이게 다가 아니다. 스키야키는 지방마다 먹는 방식도 달라 관동지방은 모든 재료를 한꺼번에 끓여 먹고, 관서지방은 처음에 고기를 구워 간을 한 후 채소를 넣고 소스에 졸이는 방식으로 익혀 먹는다. 일본의 가족음식이니만큼 지방과 가정마다 각기 다른 온갖 방법의 스키야키가 있는 셈이다.
아쉽게도 일품동은 선택지가 많지 않아 가족음식의 특징을 온전히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다. 신선도를 균일하게 관리해야 하는 고기와 채소는 그렇다고 쳐도 마무리 음식은 선택할 수 있으면 좋지 않았을까. 스키야키를 다 먹고 나면 필연적으로 고기와 채소, 간장이 섞인 육수가 남게 되는데 일본에서는 가정마다 이 육수에 밥을 부어 볶음밥을 만들기도 하고, 물을 넣어 야채죽을 먹기도 하고, 우동과 함께 볶아 야끼우동으로 마무리하기도 한다. 그중에서 야끼우동을 가장 좋아하는지라 점원이 볶음밥에 쓰일 공깃밥을 들고 나오자마자 실랑이가 시작됐다.
“볶음밥을 우동으로 바꿔줄 수 있나요.”
“저희는 우동이 없어요.”
“(충격) 아니 왜요.”
“저희는 면이 칼국수밖에 없는데 스키야키 팬에서는 익지 않거든요.”
“아, 네……”
1인용 개인 팬이 따로 준비돼 있어 함께 먹을 수 없는 점도 흠이라면 흠이다. 원래 가족음식은 집안일 잘 안 하시는 아버지가 만들어 주는 맛이 아니던가. 우리나라에서 아버지가 삼겹살을 구워주시듯, 일본에서도 스키야키를 만드는 몫은 아버지에게 돌아간다고 한다. 하지만 일품당은 개인별 인덕션이 따로 있어 각자가 요리해 먹을 수 있게 했다. 마치 삼겹살 구이판이 개인마다 따로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Two go! 화끈하게 빨고!
아버지 월급날, 어머니의 한상차림처럼
스키야키는 일본 음식 중에서 드물게 메이지 유신 전에 기원을 찾을 수 있는 요리다. 일본은 불교의 영향으로 7세기부터 육식을 금지했던 나라였다. 약 800년이 흐르면서 몸보신을 위해 생선, 가금류를 먹기 시작하던 에도시대(1603~1867년)에 스키야키의 원형이 나타났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에도시대 전기에 발간된 요리책 ‘료리모노가타리(料理物語)’에는 호미를 이용해 생선을 굽는 사카나스키(魚すき, 여기서 すき는 호미라는 의미다. 절대로 스키야키는 좋아하는 것(好き)을 구워먹는 요리라는 뜻이 아니다!)가 설명돼 있는데, 이 요리가 스키야키의 기원으로 알려졌다.
쇠고기가 들어간 지금의 스키야키가 등장한 시점은 육식이 해금된 19세기 후반 메이지유신 이후로 보는 견해가 정설이다. 영국 등 서방과 교역을 시작하면서 일본에 들어온 외국인들이 고기 요리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을 대접하기 위해 소고기를 넣은 전골 요리를 끓였다는 것이다. 서서히 고기 맛을 보기 시작하던 일본인들도 스키야키를 즐겼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스키야키는 고기 맛을 강조한 일반적인 육류요리와는 다른 특성을 보인다. 일단 고기가 적고 채소가 많아 함께 곁들여 먹는다. 입에 넣기 전에는 날계란을 찍어서 고기 맛을 덮어버린다. 육식에 낯설었던 일본인들이 고기 맛에 서서히 익숙해지기 위해 이 방식을 만들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하지만 짭조름한 육수와 고기의 농후한 육즙, 채소의 아삭함과 이를 덮어주는 날계란이 어우러진 묘한 맛이 이 요리의 매력을 더하는 것은 분명하다.
일품당의 스키야키는 관서풍이다. 스키야키가 한국에서 익숙한 음식이 아니니 점원이 만들어주는데, 맨 처음에 채소를 부어버려 젓가락을 든 시점에는 채소의 아삭함이 사라져버리는데다 직접 만들어 먹는 재미도 없으니 스스로 요리하는 것을 추천한다. 무쇠솥에는 육수가 부어져 있다. 불에 달궈서 끓기 시작하면 고기를 펼쳐 구워 양념이 배게 한다. 처음에 구워둬야 간이 배어 맛있고 부드럽게 먹을 수 있다.
고기가 어느 정도 익으면 한쪽으로 몰아넣고, 배추 버섯 두부 파 등을 순서대로 분류해 넣는다. 단, 곤약은 고기를 굳게 만드는 칼슘 성분이 있으니 최대한 고기와 떨어뜨려 놓자. 불을 중불로 줄이고 육수를 부어가며 익힌다.
마지막에는 날계란을 찍어 먹으면 처음에는 계란의 향이, 그 옷이 벗겨지면 고기와 야채의 본래 맛이 나오면서 입안에서 주마등 돌아가듯 지루하지 않은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앞에서 ‘가족음식이라기에는 부족하다’며 이죽거렸지만 그래도 일품당을 맛집으로 꼽는 이유는 사장님의 섬세함 때문이다. 스키야키는 재료를 푹 익혀 먹는 음식이 아니어서 신선도가 중요한데, 이 집에서는 고기부터 채소까지 숨이 살아있는 것이 느껴질 정도의 좋은 재료가 갖춰져 있다.
특히 재료를 찍어 먹는 날계란은 오래되면 냄새가 나고 비리기 때문에 반드시 신선해야 한다. 오래된 계란은 노른자의 점성이 약해져 쉽게 깨지는데, 이 집의 계란은 노른자가 단단하고 응집력이 있다. 먹어보면 고소한 맛이 입에 가득하다.
특히 이 집의 가장 특이한 재료는 우엉이다. 우엉은 스키야키에 자주 넣어 먹는 재료는 아닌데, 종이처럼 얇게 저며 쉽게 익는다. 더구나 김밥에 넣어 먹는 우엉 장조림처럼 간장 바탕의 육수와 잘 어울리고, 풀이 쉽게 죽는 여느 채소와는 달리 아삭아삭한 맛이 살아있다.
일품당 스키야키의 가장 큰 장점은 짜지 않다는 데 있다. 재료를 육수에 끓여 먹는 특성상 음식이 졸아붙으면 육수를 추가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염분이 높아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집은 처음에 먹을 때부터 마무리할 때까지 일정하게 적당한 맛이 유지된다. 비결은 처음에 세팅된 육수와 추가 육수의 농도 차이. 처음에는 농도가 높은 육수를 부어 재료에 간이 배게 하고, 나중에 추가하는 육수는 농도를 낮춰 졸아붙어도 짜지 않게 만든다고 한다. 스키야키 전문점 사장님의 연륜이 묻어나는 방법이다. 스키야키를 다 먹고 나면 아버지의 월급날에 맞춰 어머니가 준비하신 진수성찬을 받았다는 느낌이다.
Three go! ‘네 생각을’ 맛보고!
삼겹살·스키야키 소통법
흔하기 때문에 방법도 많은 셈이다. “고기를 다 먹은 다음에 남은 기름에 밥이랑 김치를 볶아 먹으면 맛있어.” 학원 영어 선생님은 20명 남짓의 중학생들에게 새로운 ‘삼겹살 교리’를 전도하셨다. 보습학원에서는 시험이 끝나면 ‘쫑파티’를 하는 것이 일종의 관례처럼 굳어있다. 중학교 때 다녔던 학원에서는 삼겹살 파티를 했다. 앞서 소개한 조언은 30대 교사가 15살 학생들에게 내리는 또 다른 가르침이고 제언이었다. 교과서와 문제집에서 맴도는 가르침이 아닌 삼겹살과 인생을 함께할 학생들에게 맛의 길을 일러준 교훈이기도 했다.
익숙하지 않은 방법은 불편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보통 고깃집에 으레 딸려 나오는 생마늘도 아직 혀가 민감한 탓에 받아들이지 못하던 ‘새로운’ 인간들에게 삼겹살 후 볶음밥은 ‘가지 않은 길’과도 같았다. 마치 예수의 산상설교 후처럼, 10대 중반의 인간들은 술렁거렸다. “너는 삼겹살을 그렇게 먹어본 적이 있니?” 목이 곧은 아이들은 이렇게 중얼거리기도 했다. “삼겹살 기름에 밥을 볶아먹는다면 그 지방이 내 건강을 해칠텐데……”
불편이 이해로 바뀌고 경험이 됐다. 시험 후 학원 강의실에서 삼겹살로 거사를 치른 아이들은 조용히 찬밥과 고추장을 주섬주섬 책상 위로 올리기 시작했다. 개 중에는 깨소금을 챙겨온 치밀한 녀석도 있었다. 그렇게 학생들은 가르침을 실천했다. 불판을 닦되 적당한 돼지기름을 남길 것. 김치를 먼저 볶고 찬밥을 넣을 것. 찬밥은 뭉치지 않게 젓가락으로 뒤섞을 것…… 마침내 가르침이 완성되자 너나 할 것 없이 숟가락으로 볶음밥을 떴다. “맛있다!” 폐부를 찌르는 선지자의 설교 이후 정적을 깨는 “아멘” 소리처럼, 누군가 깨달음의 감탄사를 외쳤다. 그 소리와 함께 새로운 길을 찾은 성도들은 허겁지겁 가르침의 산물을 맛보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더 이상의 의심도 없었다. 목이 곧았던 아이들은 곧 겸손해졌다. 새로운 경험의 맛은 그렇게 짜릿했다.
이해와 경험이 필요한 음식, 그것은 스키야키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는 스키야키를 두고 민망한 상황이 벌어지거나 말다툼이 일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우리 집은 스키야키에 식빵을 넣어 먹는데”라는 말에 “식빵? 보통 우동이나 야채죽을 먹지 않아?”라는 반응이 오면 ‘아, 다른 집은 식빵을 안 넣어 먹나? 창피해……’하고 생각하는 식이다. 당장 ‘관서풍과 관동풍 중 무엇이 진정한 스키야키냐’는 논쟁도 있다. ‘이 세상의 맛있는 음식의 수는 어머니의 수와 같다’는 말처럼, 저 집의 스키야키 먹는 방법은 저런 거로구나,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가면 될 일이지 않을까. 혹 스키야키에 넣어 먹는 식빵이 돼지기름에 볶은 밥처럼 맛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럴 수 있지” 삼겹살과 스키야키가 가르쳐 준 소통법이다. 마치 생각도 음식처럼 그 사람 나름의 길이 있을 테다. 가끔 그 생각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무안을 주거나 무턱대고 배척한 적은 없지 않았나. 편협한 생각에 상처를 주는 일은 없었을까, 되돌아본다. 새로운 스키야키가 입의 재미가 되듯 새로운 생각을 듣고 이해하는 일도 뇌의 재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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