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스타 라이프

[제주유기동물센터 이야기③] 입양가는 아이들은 이름이 없었다

청소에 분양까지 함께하는 명색이 고정봉사자로 자리잡으면서 궁금했던 것이 하나 있었다. 특정 강아지에게만 이름을 붙여주는건 조금 너무하지 않은가 하는 점이었다.

함께 봉사하는 이모들은 이렇게 답했다. “얘들은 조금 오래 있어야 할 것 같아. 이름이라도 붙여줘야 정붙이고 지내지.” 이름 유무를 가르는 기준은 간단하면서도 단호했다. 금방 입양될 수 있는가 아닌가.




누더기로 입소해 환골탈태 후 분양되기까지. 이 아이에게는 이름이 없었다. / 사진=최상진 기자누더기로 입소해 환골탈태 후 분양되기까지. 이 아이에게는 이름이 없었다. / 사진=최상진 기자


입양가는 기준은 확실하게 나뉘어 있었다. ‘품종견→작고→짖지않고→털이 안빠지고’ 네 가지 기준에 맞으면 공고기간 직후 입양가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에 맞지 않으면 뒤에서부터 하나씩 줄여간다. 첫 번째 조건인 품종견이 아니면 입양 갈 가능성은 극히 희박해진다.

한 부부는 “품종견 갓난아기 있으면 보여주세요. 우리가 잘 기를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순간 “애견샵에 가시라”고 쏘아붙이려다가 “여기는 보통 2살 전후의 아이들이 많다”고 친절하게 응대했다. 그들은 분양동을 둘러보는 듯 하다 소리없이 사라졌다.

7개월간 피부로 느낀 바로는 이들 조건에 맞는 말티즈, 요크셔테리어, 작은 푸들 종류가 아프지 않다는 전제 하에 센터를 가장 먼저 빠져나갔다. 보통 공고기간 10일이 끝나면 하루 이틀 정도면 새 주인을 만났다. 그래서 그 아이들에게는 누구도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품종견이기만 하다면 그래도 언젠가는 새 주인을 만났다. 덩치가 큰 푸들, 코카스파니엘과 같은 중형견도 원래 인연이 있었던 듯 첫눈에 하트를 그리는 분양자들이 있었다. 반면 그조차 충족시키지 못하는 믹스견은 탄성이 나올만큼 예쁘지 않으면 순위가 한참이나 밀렸다.

큰 개에게 물려 죽을뻔 했으나 수의사와 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살아난 푸들. 아직 센터에 있다. / 사진=최상진 기자큰 개에게 물려 죽을뻔 했으나 수의사와 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살아난 푸들. 아직 센터에 있다. / 사진=최상진 기자


이런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분양에 유리한 아이들의 치장에만 신경쓰기 시작했다. 믹스견들의 목욕은 분양시간에 사람이 없거나 분양이 끝난 이후에 억지로 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2시부터 3시까지 분양시간 동안 믹스견들은 왜 자신이 진열장에 들어가지 못하는지 모르는 채 사람 구경에 바빴다. 어차피 데려가지도 않을 사람들의 손을 좋다고 핥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서글펐다.


입양희망자들이 분양동을 방문하면 “어떤 종류를 찾으세요?”라고 물었다. 그게 그들에게도 봉사하는 입장에서도 편했다. 조건에 맞춰 강아지들을 보여주고, 안겨 보내는 사이클이 반복됐다. ‘내가 개를 팔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던 때 은숙이모와 준비 없이 온 입양자의 작은 언쟁을 목격했다. 사건 이후 ‘한 마리라도 더 보내야 한다’며 그들을 두둔하자 이모는 “준비 없이 데려가면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 이모 말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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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간 그렇게 이름 없는 강아지 수백마리를 보냈다. 대부분은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새 주인을 만나 행복해지면 표정도 털색도 달라져서 알아볼 수가 없다. 내게도 아이들에게도 기억하지 않는 편이 서로에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느 시점부터 떠나는 아이들에게 “잘 살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는 인사를 건넸다.

이름이 있는 아이들은 아프다. 이들을 데려가는 사람도 아프다. 마음이 아프거나 기억이 아프다. 아픈 아이와 아픈 사람이 만나면 서로를 치료한다. 애완견보다 반려견이라는 명칭을 더 많이 쓰는 이유다. 가족보다 더 가족같은 위로와 안식, 그 어려운 일을 이 작은 아이들이 해낸다.

닥스훈트 ‘닥스’ 파란만장한 센터 생활 후에 미소가 예쁜 아이의 품에 안겨 봉사자들 곁을 떠났다. / 사진=최상진 기자닥스훈트 ‘닥스’ 파란만장한 센터 생활 후에 미소가 예쁜 아이의 품에 안겨 봉사자들 곁을 떠났다. / 사진=최상진 기자


닥스훈트 ‘닥스’는 심장사상충에 감염돼 입소했다. 다른 개를 물어 안락사할뻔한 상황에서 이모들이 “조금만 더 지켜보자”며 살려냈다. 마침 내가 봉사를 쉬는 날, 닥스는 새 주인을 만났다가 2시간 만에 돌아왔다. 젊은 남매가 복용할 약도 받고, 도움 받을 수 있는 병원도 소개받고 웃으며 데려갔는데 보수적인 아버지가 노발대발했단다. 이후 그는 관공서에 ‘병든 개를 분양시킨 사람들’이라며 ‘어떻게 그런 사람을 쓰느냐’고 민원을 넣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모들은 적잖이 상처받았다.

파양될 경우 안락사시키는게 원칙이지만 이모들은 닥스를 다시 살려냈다. 그리고 얼마 뒤 이녀석은 행복한 가족을 새로 만났다. 제주에 정착하러 내려온 젊은 부부와 아이는 당분간 제주 곳곳을 여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닥스가 배 뒤집는걸 보여주자 까르르 웃으며 자기 몸의 절반은 되는 닥스를 안아들고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아이의 모습이 이따금씩 눈을 감으면 스쳐간다.

믹스견 달이. 오른쪽 뒷다리를 전혀 못 쓰는 상태로 센터에 들어왔지만, 새 주인을 만난 후 3개월 만에 몰라보게 변했다. / 사진=최상진 기자믹스견 달이. 오른쪽 뒷다리를 전혀 못 쓰는 상태로 센터에 들어왔지만, 새 주인을 만난 후 3개월 만에 몰라보게 변했다. / 사진=최상진 기자


믹스견 달이는 교통사고로 오른쪽 뒷발을 거의 못쓰게 됐다. 안락사 1순위였다. 다리를 질질 끄는것도 안쓰러운데 밥에 대한 욕심은 있으면서 친구들에게 뺏기는 것을 보는건 고역이었다. 다행히 봉사자의 품의 품에 안겨 마당 있는 집으로 간 달이는 3개월 만에 몰라볼 얼굴을 한 채 센터에서 함께 생활했던 친구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 품종과 상처를 넘어선 관심과 사랑이 자칫 꺼져버릴뻔 했던 생명에 비로소 행복의 가치를 느끼게 만들어줬다.

며칠, 혹은 일주일 이상 핑계를 대며 씻기지 않은 강아지를 품에 안고 ‘좋아좋아’ 흥얼거리며 사무실로 향하는 입양자의 모습을 많이 봤다. 처음에는 이상해 보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부끄러웠다. 예쁜 동물이 아니라 내 가족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 품종과 이름 상처 따위는 ‘가족’의 가치 앞에 장애물이 될 수 없다는 것, 유기동물센터에 방문한 입양자들에게 이곳 아이들은 진열된 상품이 아니라 또하나의 가족이었다.

제주유기동물보호센터는 상시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문의는 다음카페 제주유기동물사랑실천(http://cafe.daum.net/organicanimal),
페이스북 제주특별자치도 동물보호센터(https://www.facebook.com/jejuanimalshelter),
전화 064-710-4065(제주특별자치도 동물보호센터)를 통해 가능합니다.


최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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