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민중총궐기대회에 참여했다가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의식을 잃은 뒤 숨진 고(故) 백남기(69) 농민의 노제와 장례식이 고인의 사망 41일 만인 5일 진행됐다.
장례는 ‘생명과 평화 일꾼 고 백남기 농민 민주사회장’으로 이뤄졌다.
백남기 투쟁본부와 유족에 따르면 이날 백씨의 발인식은 시민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날 오전 8시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장례식장에서 치러졌다. 정현찬 투쟁본부 공동대표는 발인식에서 “백씨가 쓰러지고 장례가 치러지기까지 유족들이 큰 고통을 받아왔다”며 “지금은 고인을 편안하게 보내 드리지만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발인식에 참석한 백씨의 딸 도라지(34)씨 등 유족들은 추모 찬송가가 울려 퍼지자 눈물을 흘렸다. 10여분 진행된 발인식이 끝나고 백씨의 관은 운구차에 옮겨져 서울시 중구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백씨의 아들인 백두산씨가 영정을 들고 선두에 섰고, 유가족과 시민들이 뒤를 따랐다.
이어 오전 9시부터 명동성당에서 시작된 백씨의 장례미사는 염수정 추기경의 집례로 진행됐다. 장례미사에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종걸, 표창원 더민주 의원,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 등과 시민 1,000여명이 참석했다. 김희중 대주교는 미사에서 “평생 나눔을 실천하고 희생적으로 살아왔던 고 백남기 임마누엘의 삶을 떠올리면 장례미사를 함께 하는 것이 가슴아프다”며 “고인의 눈물은 손수건이 아닌 법과 제도로 닦아줘야 한다”고 말하며 국가의 책임을 강조했다.
장례미사가 끝난 뒤 고인이 물대포에 맞고 쓰러진 서울시 종로구 종로 1가 르메이에르 빌딩 앞에서 노제를 열었고, 오후 2시부터 3시30분까지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유족과 투쟁본부·시민들이 함께하는 장례식이 거행됐다.
1947년 보성 출생의 백씨는 중앙대 행정학과 재학 시절 학생운동에 가담했으며, 1980년 체포됐다가 이듬해 3·1절 특별사면되고서 보성으로 내려가 농업에 종사했다. 백씨는 지난해 11월14일 서울에서 열린 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해 경찰 차벽 앞에서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뒤 병원으로 옮겨졌고, 올해 9월25일 숨을 거뒀다. 투쟁본부 등은 6일 오전 9시와 11시 각각 백씨의 고향인 전남 보성과 인근 광주에서 노제를 지낼 계획이다. 백씨의 유골은 망월동 5·18구묘역에 안장된다. /박우인·이두형기자 wipark@sedaily.com
◇고(故) 백남기 농민 일지
△2015년 11월14일 : 제1차 민중총궐기 백남기씨 서울대병원 응급실 이송, 뇌출혈 수술
△ 11월18일 : 백씨 가족 강신명 전 경찰청장·구은수 전 서울경찰정장 등 고발
△ 12월11일 : 중앙지검 민중총궐기대회 참가자 6명 구속기소
△2016년 3월22일 : 백씨 가족 국가·경찰 상대 2억4,000여만원 손배 청구
△ 8월25일 : 여야 백씨 사건 청문회 합의
△ 9월25일 : 백씨 사망
△ 9월25일 : 경찰 백씨 부검영장 신청 이후 수 차례 부검 요구
△ 10월23일 : 경찰 부검영장 1차 강제집행 시도
△ 10월25일 : 경찰 부검영장 2차 강제집행 시도
△ 10월28일 : 경찰 유족에 시신 인도
△ 11월5일 : 장례식 진행
자료:투쟁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