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가

[정치 리스크에 몸사리는 자산가]MMF에만 4일 새 10조 몰려...아예 원금보장상품에 수십억 '파킹'도

최대한 투자 방망이 짧게 잡고 시장변화 주시

6개월미만 정기예금·원금보장 ELB·DLB 선호

"손실 안나면 된다" 연금·저축보험 추가불입도



#1. 부동산임대업을 하는 이희경(가명)씨는 최근 만기가 된 펀드와 예금 12억원을 모두 머니마켓펀드(MMF)에 넣었다. 거래하는 은행 PB가 주가연계증권(ELS) 투자를 권했고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신규 분양하는 아파트 청약도 생각해봤지만 이도 저도 불안하다는 판단에 내년 초까지 적극적인 투자는 접기로 마음을 먹었다.

#2. 금융자산 120억원을 보유한 자산가 문경주(가명)씨는 최근 자산의 절반인 60억원을 3개월 만기 전자단기사채에 넣었다. 지금 상황에서 중장기 투자 결정을 하기에는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전단채 만기가 돌아오기 전까지 당분간 시장 변화를 주시하면서 자산 운용 방향을 결정할 계획이다.


국내외 정치적 리스크에 경제에서도 불확실성이 증대돼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워지자 시중 자금이 갈 곳을 잃은 모양새다. 국내 정세는 ‘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국정공백이 장기화돼 국무총리는 물론 경제부총리의 인선도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다. 세계 경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미국 대선 역시 투표가 시작된 가운데 아직 판세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투자 고단수인 자산가들마저도 중장기 투자 결정을 미루고 단기로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 투자 자금을 수시입출금이 가능한 상품에 예치하거나 길어야 만기 3개월 정도로 운용하는 가운데 비과세 해외펀드 투자 등으로 한해 장사를 마무리하는 모습이다.

8일 시중은행 PB센터에 따르면 최근 수십억원대 자산가들은 원금 보장이 되거나 투자 기간이 단기인 상품에 돈을 집중하며 최대한 투자 방망이를 짧게 잡고 있다. 현재는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모두 커진 상태라는 판단에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는 얘기다.


김혜원 우리은행 본점영업부 PB팀장은 “장기적인 투자 결정을 유보하는 ‘파킹’ 자금들이 생겨나고 있다”며 “투자를 하더라도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제거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1월 정도를 만기로 한 상품들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원금 보장이 되는 단기 상품으로의 쏠림 현상이 늘고 있다. 예전에는 금리가 낮아 거들떠보지 않았던 6개월 미만 정기예금에도 돈을 넣어두거나 파생상품에서는 ELS, 파생결합증권(DLS)과 구조는 같으나 원금이 보장되는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 기타파생결합사채(DLB)에 투자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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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리스크에 자산가들이 움츠러든 것은 대표적 수시입출금 상품인 MMF로의 자금 유입에서 극명히 확인된다. 국내 MMF 유입액은 이달 들어 단 4일간 9조7,000억여원, 한 달여 동안 15조원가량 증가했다. 지난 8월 3조9,000억원, 9월 13조5,000억원이 빠져나간 후 다시 유입돼 국내외 정치권의 격랑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국내 MMF 순자산 유입액은 6월말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투표 이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을 쳤던 7월에도 18조6,000억원이나 증가했었다.

한편 한동안 계속된 변동성에 지친 자산가들 중에는 완전히 원금이 지켜지는 연금이나 저축보험 등에 넣는 돈을 늘리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신경이 많이 쓰이는 것도 싫고 어차피 돈은 다른 루트를 통해 계속 벌기에 자산은 손실만 안 나면 된다는 극단적인 선택인 것. 배종우 KEB하나은행 평창동골드클럽 센터장은 “자산가들 중에는 지금은 원금을 지키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며 “수익이 거의 없더라도 정치·경제 변동성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선택인 것”이라고 말했다.

비과세 혜택이 있는 상품을 포트폴리오에 편입하며 숨고르기를 하는 자산가들도 있다. 해외 상장주식 투자에 따른 매매·평가손익과 환손익에 비과세를 해주는 적립식 해외펀드나 금융소득에 대해 세금을 떼가는 ELS와 달리 1인당 2억원까지 비과세 혜택이 있는 ELS 변액보험 등이 그 대상이다.

다만 이 와중에 일부 투자자들은 미국 금리 인상에 미리 베팅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금리 인상기에 추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하이일드채권과 뱅크론(변동금리부 선순위 담보대출 채권) 펀드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또한 금리 인상이 달러 안정세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해 포트폴리오 다변화 차원에서 달러 관련 투자도 일부 이뤄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한승우 KB국민은행 강남스타PB센터 팀장은 “주도권을 쥐고 의사결정을 하고 싶은 자산가들은 현재의 정치·경제 상황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최순실 게이트’든 미국 대선이든 어떻게든 결정이 나고 상황이 정리돼 불확실성이 제거되면 좀 더 본격적인 투자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권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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